[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27 리터러시 없는 리터러시 - 피아노식 인사이트 [1]

블랙소스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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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 중독 시대다. 역사가 조금은 더 긴 '미디어 리터러시'는 상대적으로 친숙한 말이지만, 정보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기술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AI(인공지능) 리터러시 등 의미의 공유와 분리가 제법 수평적으로 혼재된 가운데 여러 (신)조어가 입에 오르내린다. 이 정도로도 부족해서인지, 제2세대 양자(quantum) 혁명, 양자 기술 운운 중에 오죽하면 '양자 리터러시'라는 말까지 등장했을까. 어쩌면 학교 교육과정에 등장하는 모든 과목 뒤에다 붙여도 말이 되나 싶기도 하다. 리터러시는 우리말로 표현하면 흔히 문해하거나 문식할 줄 아는 그 무엇을, 간단히 문해력이나 문식력을 일컫는 단어다. 즉, 그만큼 주변의 현상이나 변화 흐름을 분간하기 더 어려워진 난해한 세상을 우리는 통과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그러함에도, 왜 "사이언스" 리터러시란 말은 그토록 흔하게는 안 쓰이기도 할까?)

올해 초 쇼팽 연습곡 하나를 훑어보면서, 데이터 리터러시 위주로 리터러시의 본질적 일면을 간단히 다루기는 했지만, 아무리 정답이 없더라도 확연한 오해와 신화를 더 쉽게 양산하기도 하는 이 "리터러시" 이슈 또한 소연작으로 본격적으로 짚어보려 한다.

사실 ‘~력’이라는 번역된 말로는 ‘해’든 ‘식’이든 리터러시가 지니는 풍부한 뉘앙스를 담기가 쉽지는 않거나 불충분하다. 더군다나 이렇게 빠른 현상 속에서는 리터러시의 의미나 용례의 (적어도 축소되지는 않은) 보편성 또한 희석되기 마련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간단히 표현하면, 리터러시의 존재/함양 이유란 사회 구성원 간 소통에 최소로 필요한 말길, 엄밀히는 글길을 열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말귀나 글귀의 문제인데, ‘문맹’과 대척점에 놓이는 개념이다. 하지만 새로운 활동 영역이 급증하는 시대가 남기는 시사점으로서 질문을 던져보면 이러하다. 이 리터러시란, 어쩌면 사람에게 요구되는 almost everything을 아우르는 대명사로 확대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리터러시라는 말에 담긴 함의를 고려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터고, 사람이 정말 다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그 방대함에 압도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뼈대만 간추려 본다면, 경제 개발이 시작되고 필요했던 시절 요구되었던 터라서도 이제는 실질적으로 잊혀진 '문맹'의 퇴치라는 계몽적 지향점의 굴레나 방향을 여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러한 계몽성이 리터러시의 원초적 기원인지는 다소 불분명하지만, 이 시대에도 리터러시 광풍은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계몽적 원초성을 공유하는 연장선에 놓인다고 보인다. 300년 전 시대를 살았던 칸트가 던진 질문, "우리는 '계몽된 시대'를 살고 있는가?"는 여전히, 그리고 (오히려 칸트가 스스로 긍정적으로 답했던 그 시대보다 더) 절실히 유효하다. 바로 (신)기술 지배적인 흐름을 상징하는 듯하면서도 그 정체는 묘연한 "제4차 산업혁명"적 대세 속에서 맹목적 노예가 되지 않도록,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적절한 경쟁력이나 이미지, 평판을 추구하느라 무척 예민해진 아우성이나 밀도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도구적으로만 소비하는 행위에 매몰되어 이를 깊이,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없는 한계는 현대적 신종 '문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AI의 부상, 이와 맞물린 디지털 전환/혁신 운동에 수반되는 자원의 효용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대체로 생산적이기보다는 소모적이다. 아울러, 오히려 질적으로는 18세기만도 못한 반지성주의, 탈진실(post-truth)화가 가속되며 사회적, 윤리적 우려를 키우는 시대다.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역계몽적 퇴보가 아닐까? 기술 진전이 하도 빨라지기에 그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더딘 진보 상태가 퇴보처럼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양한 신종 '문맹'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앞으로 "X 리터러시"라는 형식의 조어가 얼마나 더 많이 쏟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본주의 시대다 보니 그러한 움직임 모두 하나같이 '리터러시'의 보편적 역할과 의미를 망각하거나 왜곡하기 쉽게 만드는 물신적 부작용을 낳을 법하다. 어쩌면 언어 교육의 근간이나 흔들 뿐이지, 리터러시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 모종의 리터러시를 통해 '퇴치'하려는 컴(퓨터)맹이니 디지털맹이니 기술맹이니 하는, 시대적 초조함과 결핍감을 투영하는 말들은 어떤 면에서는 과도기적이고 한정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는 다행일지 모르지만, 온전한 리터러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역효과도 몰고 온다. 가령, 요즘 '컴맹'이라는 표현이 과거 특정 시기만큼 사회적으로 유행하는 분위기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굳이 명명하자면) 컴퓨터 리터러시가 제대로 기능한 결과일까?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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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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