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이다. 임시 공휴일로 지정됨은 (아니었다면 이 글을 못 쓸 수도) 반갑지만 시가 행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명 '오버'라는 느낌이다. 아무튼 날이 날이니, 본 연재의 주제에 맞춰 몇 자 끼적여본다.
군대라는 말로 가장 잘 연상되는 피아노 곡이 뭐가 있을까? (참고로, 이하에서 어지간해서 혼선이 안 생기면 작곡가들 이름은 full name을 생략하겠다.) 보통은 행진곡이나 팡파레에 속하는 범주가 해당될 터라 건반악기의 독주곡은 잘 안 어울릴 법도 하지만, 정말 그럴까?
먼저 십중팔구 꼽을 작품은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이다. 원래는 세 곡의 모음곡이고 연탄곡이다(연탄이라 함은 주로 "for 4 hands" 곡을 말한다. 독주가 아닌 형태에 대해서는 기존에 한번 소개한 꼭지가 있으니 참고해주시면 되겠다.).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지만 피아노의 다양한 구성으로, 또는 오케스트라용이나 여타 편곡이 다양하게 될 만큼 유명하고 특히 1번이 유명하다(도이치 번호로 표기하면 D. 733). 딱 들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야말로 '군대 행진곡' 느낌이다. 당연히 군악대용으로도 편곡되고는 한다.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대중적인 곡이다. 이런 군대적 느낌은 행진곡풍 리듬감이 자아내는 데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선율을 분위기에 맞게 뽑아내는 재주 하나는 음악사를 통틀어 정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슈베르트의 솜씨도 크게 몫을 한다고 본다. (이전에도 가벼이 언급했지만, 슈베르트는 사실 피아노라는 악기와 그렇게 친한 작곡가는 아니다.)
이 군대 행진곡은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도 걸핏하면 들리는 대표적 몇몇 곡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즉, 그렇게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일명 독주용으로 (다소 정도 차이는 있지만) 축소한 버전이 일명 '소곡집'이나 '명곡집'에도 실린다. 요즘은 어떻게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필자의 어릴 적 기억으로는 유명 작품을 모을 때 쉬운 곡들이 주로 실린 소곡집, 그보다 조금 어려운 곡들을 또 다시 '상', '하' 정도의 난이도로 나누어서 명곡집 I, II로 묶어 나온 악보집이 떠오른다. 당연히 I권이 더 쉬운 곡들로 구성되며, II권에는 쇼팽 연습곡 등이 들어갈 정도로 어려운 곡들도 실렸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군대 행진곡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여기서부턴 요즘 그렇게도 핫한 chatGPT도 헛소리(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음에도 너무 심해서) 좀 작작 했으면 싶을 정도의 답변을 줄 정도로(적어도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잘 안 알려진 이야기다. 물론 피아노 (일명) '덕후'나 전공자급에는 해당 사항이 아니겠다. 일단 이 녀석은 뭐라 했는지 (편의상 일부만) 보자.
이 대목에서 같이 나누고 싶은 작품은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 원곡을 카를 타우지히(Carl Tausig)가 연탄이 아닌 솔로로 편곡한 버전이다. ChatGPT가 Sigmund Tausig라고 한 인물은, 직어도 피아노사 문헌에서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인물이지 싶다. 이 AI가 in-context learning에 능하다고 하여, 어지간한 Q&A를 할 때는 중간중간 정보를 주면 알아서 잘 고치는 편인데도, 이번 이 '타우지히' 사건은 예외라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세종대왕 맥북 투척 사건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일단 연주부터 들어보시자(지루하시면 처음 반만 들으시면 된다, 동곡의 동연주자의 다른 연주 녹음이 두 개 들어간 클립이므로~ 시대적 배경상 바로 이 연주의 영상은 아무리 찾아도 못들 구하실 테니, 가만히 악보라도 따라가면서 즐겨보시길! 유튜브 시대에 누군가 연주 녹화를 해서 올린 영상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님, 있다고 해도 그 종류는 정말 희소할 것이다.)!
이 곡을 필자 역시 이 클립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연주 녹음반으로 들은 기억이 처음인데, 듣자마자 그 순간 정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곡이다. 호로비츠가 (화가가 아님에도) '색채'의 마법사라 할 정도로 피아노 건반을 팔레트처럼 만드는 재주가 워낙 탁월하지만, 편곡 자체부터가 원곡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정말로 피아니스틱하게 잘 되었기 때문이다(위에서 슈베르트의 특징을 하나 간단히 꼽았지만 슈베르트의 원작 피아노 작품들은 거의 다 그렇게 피아니스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등 일부 작품들이 유명한 사실과는 또 다른 결의 이야기다.).
한 작품으로 너무 이야기가 몰린 감이 있지만, 그만큼 이야기를 많이 할 만한 곡이기도 해서 이상할 까닭은 없다. 그 외에는 쇼팽의 '군대' 폴로네이즈가 있다. 보통은 그냥 폴로네이즈 3번 op. 40-1, A major 작품인데, '군대'라는 부제는 쇼팽 자신이 붙인 표현이 아니라, 출판 과정에서 달린 명칭이다. 사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쇼팽의 폴로네이즈는 어떻게 보면 적어도 1~6번까지는 어느 작품에서나 군대적, 또는 군악적 색채가 곳곳에서 보인다. "환상" 폴로네이즈로 알려진 7번에서 이 장르는 정점을 찍었다고 보이는데 사실 7번 정도면 부제가 암시하듯, 이게 환상곡인지 폴로네이즈인지 다소 구분이 안 가는 패시지가 제법 길게 등장하기도 하면서 군대풍은 거의 자취를 감춘다. 폴로네이즈라는 범주로 쇼팽이 작곡한 흔적을 남긴 작품은 20개가 조금 안 되는데, 8번 이후의 작품은 잘 연주도 안 되고 하다 보니 대중적으로도 무척 생소하다. 이들 쇼팽 폴로네이즈 중에서는 당연히 '영웅' 폴로네이즈인 6번, op. 53이 가장 유명한데, 이 곡도 도입부에서 마치 군사들이 발 맞추어 움직이는 발자국 (행군이나 행진보다는 마치 무슨 특수한 작전을 위한 거동에서 나오는) 소리를 연상케 하는 진행이며, 중간에서는 대놓고 '나팔' 소리를 묘사하기도 하는 등 제법 "military"하다. 어떻게 보면 쇼팽의 작품들은 꼭 폴로네이즈가 아니더라도 애국심이나 민족성, 저항의식이 담긴 경우들이 종종 등장하므로, 이것이 군대를 연상케 하는 느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명시적으로 부제가 달린 곡 중에는 피아노 곡으로는 이 정도 외에는 많이 알려진 군대풍 작품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부제가 없더라도, 그런 느낌을 주는 작품들은 의외로 다양한 편이다. 비장함이 느껴지는 작품은 전투나 전쟁과 심리적으로 연결되기 쉬우며, 일사불란함이 느껴지는 작품에서는 군기나 단결력이 연상되기도 한다. 가령, '전투적'인 작품이 그런 범주에 들 수 있는데, 그렇다고 또 '전투적' 성격에서 모두가 군대를 꼭 떠올리라는 법은 없으니 이쯤이 어느 정도 경계 역할을 하는 지점이지 싶다. 다만, 조금 더 나아가보면 슈만, 프로코피에프,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등의 토카타성 작품에서는 상당히 mechanical한 느낌이 강조되는데, 이 또한 군대를 연상케 할 소지가 큰 성격이라고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느낀다.
독주곡 외로 넓혀서 대표적인 예들을 떠올려본다면, 하이든 교향곡(100번에 "군대"라는 표제가 있다), 베토벤 교향곡 중 3번 "에로이카"(영웅) 정도에서 군대풍이 당연히 느껴지고, 모든 행진곡이 군대풍은 아니지만 라데츠키 행진곡처럼 유명한,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빈 필 신년 음악회의 붙박이 앙코르 곡인 이 행진곡만큼은 유명한 군대용 작품이다.
끝으로, 미국의 국가(The Star-Spangled Banner)급 (바꿔 말하면 애국심을 자아낸다고 하면 될까) 행진곡인 John Philip Sousa 작곡의 "The Stars and Stripes Forever"를 이 목록에 포함하고 싶다. 미국 작품이라 더 그런지 더러는 팡파레풍이기도 하다. 원곡을 미국 군악대들이 연주해서인지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어쩌면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보다 더 대중적일지도 모르겠다. 미국만큼이 아니더라도 세계 어디서든 딱 들어보면, 아, 언제고 (어디선지 잘 몰라도) 분명 들어는 본 그 멜로디이자 분위기니까. 악단용으로 작곡되었음에도, 피아노 연탄곡이나 독주곡으로도 후에 편곡되었다. 그 가운데서 역시 위의 군대 행진곡 편곡 연주 예로 선정한 호로비츠가 (편곡하고) 연주한 녹음이 단연 유명하다. 이왕 소개한 김에 연주 당시 라이징 스타급 틴에이저의 영상 링크도 같이 남긴다. 도로 피아노 곡으로 돌아와서 마쳤으니 악보라면 다 카포라도 찍은 셈이려나.
PS 1: (미국 국가도 편곡해 연주한, 미국을 사랑했나 싶은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이야기는 당연히 적어도 한 번은 집중적으로 나눠볼 기회가 나중에 생기리라 믿는다.
PS 2: 이유야, 학습 데이터 불충분인지, 사실 그렇게 아주 세부적인 특화된 정보라 할 수도 없는 음악 작품 관련 답변에서 chatGPT는 어이없는 답변을 훨씬 많이 주고 있다. 조금 더 나중에 이에 관련된 글을 쓸 때 같은 걸 물어보면 나아져 있으려나, 이 역시 한번 집중해서 다루어봐야겠다(시간이 지나면 사실과 달라질 내용일지언정, 주의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국군의 날이다. 임시 공휴일로 지정됨은 (아니었다면 이 글을 못 쓸 수도) 반갑지만 시가 행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명 '오버'라는 느낌이다. 아무튼 날이 날이니, 본 연재의 주제에 맞춰 몇 자 끼적여본다.
군대라는 말로 가장 잘 연상되는 피아노 곡이 뭐가 있을까? (참고로, 이하에서 어지간해서 혼선이 안 생기면 작곡가들 이름은 full name을 생략하겠다.) 보통은 행진곡이나 팡파레에 속하는 범주가 해당될 터라 건반악기의 독주곡은 잘 안 어울릴 법도 하지만, 정말 그럴까?
먼저 십중팔구 꼽을 작품은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이다. 원래는 세 곡의 모음곡이고 연탄곡이다(연탄이라 함은 주로 "for 4 hands" 곡을 말한다. 독주가 아닌 형태에 대해서는 기존에 한번 소개한 꼭지가 있으니 참고해주시면 되겠다.).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지만 피아노의 다양한 구성으로, 또는 오케스트라용이나 여타 편곡이 다양하게 될 만큼 유명하고 특히 1번이 유명하다(도이치 번호로 표기하면 D. 733). 딱 들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야말로 '군대 행진곡' 느낌이다. 당연히 군악대용으로도 편곡되고는 한다.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대중적인 곡이다. 이런 군대적 느낌은 행진곡풍 리듬감이 자아내는 데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선율을 분위기에 맞게 뽑아내는 재주 하나는 음악사를 통틀어 정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슈베르트의 솜씨도 크게 몫을 한다고 본다. (이전에도 가벼이 언급했지만, 슈베르트는 사실 피아노라는 악기와 그렇게 친한 작곡가는 아니다.)
이 군대 행진곡은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도 걸핏하면 들리는 대표적 몇몇 곡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즉, 그렇게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일명 독주용으로 (다소 정도 차이는 있지만) 축소한 버전이 일명 '소곡집'이나 '명곡집'에도 실린다. 요즘은 어떻게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필자의 어릴 적 기억으로는 유명 작품을 모을 때 쉬운 곡들이 주로 실린 소곡집, 그보다 조금 어려운 곡들을 또 다시 '상', '하' 정도의 난이도로 나누어서 명곡집 I, II로 묶어 나온 악보집이 떠오른다. 당연히 I권이 더 쉬운 곡들로 구성되며, II권에는 쇼팽 연습곡 등이 들어갈 정도로 어려운 곡들도 실렸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군대 행진곡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여기서부턴 요즘 그렇게도 핫한 chatGPT도 헛소리(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음에도 너무 심해서) 좀 작작 했으면 싶을 정도의 답변을 줄 정도로(적어도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잘 안 알려진 이야기다. 물론 피아노 (일명) '덕후'나 전공자급에는 해당 사항이 아니겠다. 일단 이 녀석은 뭐라 했는지 (편의상 일부만) 보자.
이 대목에서 같이 나누고 싶은 작품은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 원곡을 카를 타우지히(Carl Tausig)가 연탄이 아닌 솔로로 편곡한 버전이다. ChatGPT가 Sigmund Tausig라고 한 인물은, 직어도 피아노사 문헌에서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인물이지 싶다. 이 AI가 in-context learning에 능하다고 하여, 어지간한 Q&A를 할 때는 중간중간 정보를 주면 알아서 잘 고치는 편인데도, 이번 이 '타우지히' 사건은 예외라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세종대왕 맥북 투척 사건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일단 연주부터 들어보시자(지루하시면 처음 반만 들으시면 된다, 동곡의 동연주자의 다른 연주 녹음이 두 개 들어간 클립이므로~ 시대적 배경상 바로 이 연주의 영상은 아무리 찾아도 못들 구하실 테니, 가만히 악보라도 따라가면서 즐겨보시길! 유튜브 시대에 누군가 연주 녹화를 해서 올린 영상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님, 있다고 해도 그 종류는 정말 희소할 것이다.)!
이 곡을 필자 역시 이 클립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연주 녹음반으로 들은 기억이 처음인데, 듣자마자 그 순간 정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곡이다. 호로비츠가 (화가가 아님에도) '색채'의 마법사라 할 정도로 피아노 건반을 팔레트처럼 만드는 재주가 워낙 탁월하지만, 편곡 자체부터가 원곡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정말로 피아니스틱하게 잘 되었기 때문이다(위에서 슈베르트의 특징을 하나 간단히 꼽았지만 슈베르트의 원작 피아노 작품들은 거의 다 그렇게 피아니스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등 일부 작품들이 유명한 사실과는 또 다른 결의 이야기다.).
한 작품으로 너무 이야기가 몰린 감이 있지만, 그만큼 이야기를 많이 할 만한 곡이기도 해서 이상할 까닭은 없다. 그 외에는 쇼팽의 '군대' 폴로네이즈가 있다. 보통은 그냥 폴로네이즈 3번 op. 40-1, A major 작품인데, '군대'라는 부제는 쇼팽 자신이 붙인 표현이 아니라, 출판 과정에서 달린 명칭이다. 사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쇼팽의 폴로네이즈는 어떻게 보면 적어도 1~6번까지는 어느 작품에서나 군대적, 또는 군악적 색채가 곳곳에서 보인다. "환상" 폴로네이즈로 알려진 7번에서 이 장르는 정점을 찍었다고 보이는데 사실 7번 정도면 부제가 암시하듯, 이게 환상곡인지 폴로네이즈인지 다소 구분이 안 가는 패시지가 제법 길게 등장하기도 하면서 군대풍은 거의 자취를 감춘다. 폴로네이즈라는 범주로 쇼팽이 작곡한 흔적을 남긴 작품은 20개가 조금 안 되는데, 8번 이후의 작품은 잘 연주도 안 되고 하다 보니 대중적으로도 무척 생소하다. 이들 쇼팽 폴로네이즈 중에서는 당연히 '영웅' 폴로네이즈인 6번, op. 53이 가장 유명한데, 이 곡도 도입부에서 마치 군사들이 발 맞추어 움직이는 발자국 (행군이나 행진보다는 마치 무슨 특수한 작전을 위한 거동에서 나오는) 소리를 연상케 하는 진행이며, 중간에서는 대놓고 '나팔' 소리를 묘사하기도 하는 등 제법 "military"하다. 어떻게 보면 쇼팽의 작품들은 꼭 폴로네이즈가 아니더라도 애국심이나 민족성, 저항의식이 담긴 경우들이 종종 등장하므로, 이것이 군대를 연상케 하는 느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명시적으로 부제가 달린 곡 중에는 피아노 곡으로는 이 정도 외에는 많이 알려진 군대풍 작품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부제가 없더라도, 그런 느낌을 주는 작품들은 의외로 다양한 편이다. 비장함이 느껴지는 작품은 전투나 전쟁과 심리적으로 연결되기 쉬우며, 일사불란함이 느껴지는 작품에서는 군기나 단결력이 연상되기도 한다. 가령, '전투적'인 작품이 그런 범주에 들 수 있는데, 그렇다고 또 '전투적' 성격에서 모두가 군대를 꼭 떠올리라는 법은 없으니 이쯤이 어느 정도 경계 역할을 하는 지점이지 싶다. 다만, 조금 더 나아가보면 슈만, 프로코피에프,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등의 토카타성 작품에서는 상당히 mechanical한 느낌이 강조되는데, 이 또한 군대를 연상케 할 소지가 큰 성격이라고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느낀다.
독주곡 외로 넓혀서 대표적인 예들을 떠올려본다면, 하이든 교향곡(100번에 "군대"라는 표제가 있다), 베토벤 교향곡 중 3번 "에로이카"(영웅) 정도에서 군대풍이 당연히 느껴지고, 모든 행진곡이 군대풍은 아니지만 라데츠키 행진곡처럼 유명한,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빈 필 신년 음악회의 붙박이 앙코르 곡인 이 행진곡만큼은 유명한 군대용 작품이다.
끝으로, 미국의 국가(The Star-Spangled Banner)급 (바꿔 말하면 애국심을 자아낸다고 하면 될까) 행진곡인 John Philip Sousa 작곡의 "The Stars and Stripes Forever"를 이 목록에 포함하고 싶다. 미국 작품이라 더 그런지 더러는 팡파레풍이기도 하다. 원곡을 미국 군악대들이 연주해서인지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어쩌면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보다 더 대중적일지도 모르겠다. 미국만큼이 아니더라도 세계 어디서든 딱 들어보면, 아, 언제고 (어디선지 잘 몰라도) 분명 들어는 본 그 멜로디이자 분위기니까. 악단용으로 작곡되었음에도, 피아노 연탄곡이나 독주곡으로도 후에 편곡되었다. 그 가운데서 역시 위의 군대 행진곡 편곡 연주 예로 선정한 호로비츠가 (편곡하고) 연주한 녹음이 단연 유명하다. 이왕 소개한 김에 연주 당시 라이징 스타급 틴에이저의 영상 링크도 같이 남긴다. 도로 피아노 곡으로 돌아와서 마쳤으니 악보라면 다 카포라도 찍은 셈이려나.
PS 1: (미국 국가도 편곡해 연주한, 미국을 사랑했나 싶은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이야기는 당연히 적어도 한 번은 집중적으로 나눠볼 기회가 나중에 생기리라 믿는다.
PS 2: 이유야, 학습 데이터 불충분인지, 사실 그렇게 아주 세부적인 특화된 정보라 할 수도 없는 음악 작품 관련 답변에서 chatGPT는 어이없는 답변을 훨씬 많이 주고 있다. 조금 더 나중에 이에 관련된 글을 쓸 때 같은 걸 물어보면 나아져 있으려나, 이 역시 한번 집중해서 다루어봐야겠다(시간이 지나면 사실과 달라질 내용일지언정, 주의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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