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기후위기 이야기 #20 탈성장과 기후위기

박재용
2023-11-17


1.
희순씨는 만두를 팝니다 시장 어귀 조그만 점포에서 포장 판매만 하죠. 처음 시작할 때는 좀 힘들었지만 다행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오전 9시에 나와 준비를 하고 11시 정도에 문을 엽니다. 오후 6시 정도까지 팔면 하루에 50만 원 정도 매출을 올렸습니다. 일요일 쉬고 한 달에 1300만 원 가량 매출이 오르죠. 순수익은 약 400만 원 정도입니다. 


개업을 하고 6개월 정도 지나자 입소문이 났는지 오후 4~5시면 준비한 만두가 다 팔립니다. 희순씨는 욕심이 납니다. 아침에 8시에 나와 만두를 좀 더 많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살림만 하던 아내도 낮에 나와 서너 시간 돕습니다. 이제 하루 매출이 70만 원 정도 되고 한 달에 순수익이 500만 원이 넘습니다. 


희순씨는 이제 아침 7시에 나와 장사 준비를 시작합니다. 직원도 한 명 두었습니다. 오후 8시까지 일을 합니다. 한 달 매출이 2500만원이 되었습니다. 수익은 1000만 원 가량 됩니다. 


2. 
신진정밀은 꽤 기술력이 탄탄한 회사입니다. 초반에는 고생을 했지만 이제 납품처에 기술력을 인정받아 안정적인 매출이 나옵니다. 직원 30명의 작은 기업이지만 연 매출이 100억에 순이익이 10억 정도 나옵니다. 


사장은 작년에 큰 결심을 했습니다. 20억을 들여 공장을 개비합니다. 라인도 새로 깔고 산업용 로봇도 두 대 더 도입했습니다. 이제 하루 생산량이 이전에 비해 1.5배 정도 늘었습니다. 불량품 비율도 줄었지요. 사장은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자 흡족해집니다. 경력자를 영업팀에 한 명 더 채용합니다. 연 매출이 150억까지 늘고 순이익이 15억으로 늘었습니다. 


납품하는 대기업이 늘면서 납품량도 계속 늘어납니다. 노동자들은 야근을 하고 월급도 늘어납니다. 회사는 라인을 증설하고 현장 노동자를 더 뽑습니다. 연 매출은 이제 300억이 되고 순이익은 30억으로 늘었습니다. 


3.
그런데 말이죠, 다른 상상은 불가능할까요? 가령 이렇게 말입니다. 


희순씨는 이제 오전 9시에 나와서 만두가 다 팔리는 오후 4시쯤 문을 닫습니다. 오후 5시가 되면 매장 정리를 끝내고 집으로 갑니다. 이제 두 살인 아이와 집안 살림에 지친 아내가 쉴 시간입니다. 희순씨는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도 합니다. 오후 7시쯤 되면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셋이서 산책을 합니다. 일요일 하루 쉬던 걸 토일 쉬는 걸로 바꾸고 주말이면 가족들이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하지요. 


신진정밀은 20억을 들여 공장을 개비합니다. 라인도 새로 깔고 산업용 로봇도 두 대 더 도입했습니다. 생산성이 올라가서 이제 오후 3시면 하루 생산량이 맞춰집니다. 사장과 노동자는 일주일에 4일만 출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진 공장 문을 닫습니다. 월급은 오르지 않았지만 시간은 늘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금요일 오전 일찍 여행을 가기도 하고 누구는 동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4.
우리나라는 이제 평균 소득이 3만 달러입니다. 1년에 국민 한 명당 4000만 원 정도의 소득이 있는 거죠. 우리보다 1인당 소득이 더 높은 나라도 있지만 선진국이라해도 아무도 뭐랄 사람이 없습니다. 


정부는 매년 3% 정도의 경제 성장을 목표로 잡고 실제로 코로나19 등의 상황을 제외하면 2010년부터 꾸준히 그 정도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인당 평균소득은 일본을 추월했고, R&D규모는 세계 5위입니다. 무역은 세계 8~10위권이죠. 


자체 기술로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데 성공했고 군사력도 세계 상위권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압축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만족하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GDP 규모가 더 커지고,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차라리 그 시간의 일부를 돌려 개개인이 더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게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왜 경제는 더욱 발전하는데 거기 사는 우리는 매일 과한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요?


5.
물론 이런 다른 현실, 더 이상의 경제적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 삶은, 바라더라도 쉽지 않습니다. 만두가게 희순씨는 그나마 가능하지요. 개인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이런 결정을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규모가 클수록 더 하지요. 만약 상장된 주식회사라면 당장 주주들이 난리가 나겠지요. 또 사업 분야가 겹치는 다른 경쟁사들과의 경쟁에서 처지는 것도 두려울 것이고요. 국가도 마찬가지일겁니다. 더 이상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 나라, 경제규모를 키우는 대신 공동체와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는 나라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 국가를 지탱하는 건 이론적으로는 주권을 가진 국민이지만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와 그를 가능케하는 기업, 관료 군사력 등이니까요. 


그래서 탈성장(degrowth)은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탈성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체제 전환’을 말합니다. 그저 자연에서의 삶, 소박하고 소비를 줄이는 삶, 힐링을 주는 삶이 아니라 체제를 전환하는 가장 불온한 말이자 행동입니다. 


그런데 기후 위기 이야기에 왜 탈성장이냐고요? 그림에서 달팽이가 이야기하네요. 
지속가능한 유일한 성장은 탈성장뿐이라고. 저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기후위기 때문에도, 기후위기가 아니라도


출처: '녹색성장 말고 기후정의' (박재용 저 | 뿌리와이파리) 내용 중  


작성자: 박재용 (전업 작가, ESC 지구환경에너지위원회 부위원장)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곳, 과학과 인간이 만나는 곳에 대한 글을 주로 썼습니다. 지금은 과학과 함께 사회문제에 대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글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출간된 책으로는 '불평등한 선진국',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통계 이야기',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웰컴 투 사이언스 월드', '과학 VS 과학' 등 20여 종이 있습니다.


#기후위기이야기 #기후위기_기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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