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거듭 강조하지만, 번역에 정답이 존재하는 경우는 상당히 한정적이다. 즉, 딱 그 하나 외에 대안이 없는 경우들. 따라서 별로 시원한 답 없이 넘어가는 질문들은 정말로 답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학 콘텐츠, 특히 텍스트나 책의 번역에 입문하는 분들을 위한 가이드나 팁을 공유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참고할 거리를 제공하는 선에 불과하다. 심지어 ‘번역’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고유명사도 ‘번역’해야 하느냐는 물음은 왜 필요한가? 그냥 소리 나는 대로, 또는 발음(기호) 따라 차음이나 음역을 하면 되니까 이는 별도 번역과는 별개라는 막연한 인식 속에서 평소 언어 습관이나 경험에 따라 가볍게 넘기기 쉬운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에 적어도 한 번은 짚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슈도 마찬가지지만 번역의 세계에서 어떤 의문들이 정답이 없거나 찾기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무의미한 법은 거의 없다.
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MIT’의 예시로 돌아가보자.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정도, 또는 줄여서, ‘메사추세츠 공대’ 정도면 적절하거나 무난하리라고 안을 하나 제시했다. 하지만, 이 선택을 최선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잠깐, 고유명사의 번역을 논하고 있는데, 다시 원점으로 가보자. 앞에서 ‘공과대학교’ 부분은 충분히 이야기를 했다 싶은데, 그럼, ‘메사추세츠’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가?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렸으면 대단한 센스다! 어지간히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충실히 따르는 선택 또한 훌륭한 번역이다. (이 외래어 표기법에 관해서는 추후 다시 자세히 나눌 기회가 오리라 본다.)
Massachusetts라는 지명의 엄밀한 번역은 ‘매사추세츠’이다.
이 문제는 해결했으므로, 다시 ‘MIT’의 번역으로 가보자. 필자 생각에 더 나은 대안은 MIT다. MIT를 MIT라고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그게 무슨 번역이냐고? 무조건 약자는 로마자 그대로 표기한다는 규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무작정 기계적으로 MIT라고 정한다면 번역을 했다고 하기가 상당히 어렵겠지만, 앞 편부터 논의한 흐름에 따른 의사결정 과정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엄연한 번역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따라서 ‘옮긴이 주’나 ‘역자 서문’ 등 원어 텍스트 외에 다른 부분을 가미하는 선택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인 필자의 경우(역자는 ‘다름이 아닌 번역된 텍스트로만 말한다’라는 개인적 번역관에 따라), MIT만으로는 독자들에게 너무 썰렁하거나 불친절하다면 결국 한국어판 텍스트에는 최초 등장 시,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정도의 병기를 택하고, 이후에는 “MIT”로만 쓰고 지나가는 방식으로. 물론 처음 병기의 우선 순위는 편집 규정을 따르거나 다소 선택적이어도 괜찮을 듯하다.
당연히 MIT는 한 가지 예시일 뿐으로, 약어 자체가 이미 브랜드나 트레이드마크처럼 기능할 정도로 유명해진 이름은 학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가령, BBC처럼, 학교명보다 더 대중적일 만한 방송국 이름을 보자. 한국 내에서는 더 익숙할 KBS, MBC, SBS 등을 생각해보자.
약어 자체가 전하는 인지도와 이미지, 상징성, 정체성 등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 이미 세계적으로 브랜드화된 명칭이라 할 수 있겠다. 아직까지 보수적으로, 한국어 텍스트 내 생으로 로마자를 표기하기를 꺼리는 편집 정책을 펴는 경우, MIT를 “엠아이티”로 표기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한데, 논리적으로는 수긍하지만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의미와 뉘앙스 면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또한 단정하기 어려워지는 장면은 국제기구명 앞에서다. 유엔, 유네스코 같은 한글 자모 표기는 이미 많이 익숙하지 않은가? 꼭 UN, UNESCO처럼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는 또 국제적이냐 아니냐 문제는 아니다. KBS를 로마자로 쓰지 않고 “케이비에스”라는 자모의 활자로 쓴다고 상상해보자, 잘 와 닿겠는가?
이 정도면 조직이나 기관 등의 명칭역을 두고 할 만한 이야기를 다 했을 법도 하겠지만, 고유명사 중 인명을 다루는 순서로 넘어가기 전에, 다음 편에서는, (발)음역보다는 조금 더 의미역을 고민할 비중이 높은 명칭의 예만큼은 간단히라도 짚어봐야 할 화두라고 판단해 내친 김에 조금 더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번역
+ 과학도 번역이 되나요?
중간에 거듭 강조하지만, 번역에 정답이 존재하는 경우는 상당히 한정적이다. 즉, 딱 그 하나 외에 대안이 없는 경우들. 따라서 별로 시원한 답 없이 넘어가는 질문들은 정말로 답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학 콘텐츠, 특히 텍스트나 책의 번역에 입문하는 분들을 위한 가이드나 팁을 공유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참고할 거리를 제공하는 선에 불과하다. 심지어 ‘번역’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고유명사도 ‘번역’해야 하느냐는 물음은 왜 필요한가? 그냥 소리 나는 대로, 또는 발음(기호) 따라 차음이나 음역을 하면 되니까 이는 별도 번역과는 별개라는 막연한 인식 속에서 평소 언어 습관이나 경험에 따라 가볍게 넘기기 쉬운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에 적어도 한 번은 짚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슈도 마찬가지지만 번역의 세계에서 어떤 의문들이 정답이 없거나 찾기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무의미한 법은 거의 없다.
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MIT’의 예시로 돌아가보자.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정도, 또는 줄여서, ‘메사추세츠 공대’ 정도면 적절하거나 무난하리라고 안을 하나 제시했다. 하지만, 이 선택을 최선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잠깐, 고유명사의 번역을 논하고 있는데, 다시 원점으로 가보자. 앞에서 ‘공과대학교’ 부분은 충분히 이야기를 했다 싶은데, 그럼, ‘메사추세츠’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가?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렸으면 대단한 센스다! 어지간히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충실히 따르는 선택 또한 훌륭한 번역이다. (이 외래어 표기법에 관해서는 추후 다시 자세히 나눌 기회가 오리라 본다.)
Massachusetts라는 지명의 엄밀한 번역은 ‘매사추세츠’이다.
이 문제는 해결했으므로, 다시 ‘MIT’의 번역으로 가보자. 필자 생각에 더 나은 대안은 MIT다. MIT를 MIT라고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그게 무슨 번역이냐고? 무조건 약자는 로마자 그대로 표기한다는 규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무작정 기계적으로 MIT라고 정한다면 번역을 했다고 하기가 상당히 어렵겠지만, 앞 편부터 논의한 흐름에 따른 의사결정 과정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엄연한 번역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따라서 ‘옮긴이 주’나 ‘역자 서문’ 등 원어 텍스트 외에 다른 부분을 가미하는 선택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인 필자의 경우(역자는 ‘다름이 아닌 번역된 텍스트로만 말한다’라는 개인적 번역관에 따라), MIT만으로는 독자들에게 너무 썰렁하거나 불친절하다면 결국 한국어판 텍스트에는 최초 등장 시,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정도의 병기를 택하고, 이후에는 “MIT”로만 쓰고 지나가는 방식으로. 물론 처음 병기의 우선 순위는 편집 규정을 따르거나 다소 선택적이어도 괜찮을 듯하다.
당연히 MIT는 한 가지 예시일 뿐으로, 약어 자체가 이미 브랜드나 트레이드마크처럼 기능할 정도로 유명해진 이름은 학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가령, BBC처럼, 학교명보다 더 대중적일 만한 방송국 이름을 보자. 한국 내에서는 더 익숙할 KBS, MBC, SBS 등을 생각해보자.
약어 자체가 전하는 인지도와 이미지, 상징성, 정체성 등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 이미 세계적으로 브랜드화된 명칭이라 할 수 있겠다. 아직까지 보수적으로, 한국어 텍스트 내 생으로 로마자를 표기하기를 꺼리는 편집 정책을 펴는 경우, MIT를 “엠아이티”로 표기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한데, 논리적으로는 수긍하지만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의미와 뉘앙스 면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또한 단정하기 어려워지는 장면은 국제기구명 앞에서다. 유엔, 유네스코 같은 한글 자모 표기는 이미 많이 익숙하지 않은가? 꼭 UN, UNESCO처럼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는 또 국제적이냐 아니냐 문제는 아니다. KBS를 로마자로 쓰지 않고 “케이비에스”라는 자모의 활자로 쓴다고 상상해보자, 잘 와 닿겠는가?
이 정도면 조직이나 기관 등의 명칭역을 두고 할 만한 이야기를 다 했을 법도 하겠지만, 고유명사 중 인명을 다루는 순서로 넘어가기 전에, 다음 편에서는, (발)음역보다는 조금 더 의미역을 고민할 비중이 높은 명칭의 예만큼은 간단히라도 짚어봐야 할 화두라고 판단해 내친 김에 조금 더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번역
+ 과학도 번역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