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국립과학관의 흔적을 찾아서

김기상
2024-05-14


우리나라의 과학관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5월 10일은 1927년 서울 남산 자락(현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기억의 터)에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이 개관한 지 97주년이 된 날이었다. 일제강점기이던 1925년 다이쇼 천황은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17만원을 조선총독부에 사회교육장려금으로 하사했다. 조선총독부는 과학이 가져온 근대 문명의 혜택과 달라질 조선의 미래를 선전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학관을 짓기로 했다. 마침 총독부가 경복궁 안으로 이전하면서 비워진 건물에 천황의 결혼기념일인 5월 10일에 맞춰 과학관을 개관했다.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1927~1950), 구 조선총독부 청사(1916~1926)>

<총독부 청사에 과학관을 짓기로 하고 천문학, 광학, 역학 등 분야의 근대 과학기구들을 전시할 것을 알리는 기사.(1925. 12. 24. 조선일보)>


은사과학관은 ‘조선 내외의 교화에 관련된 자료를 모아 현대문화를 종합하여 일목요연하게 전시하여 문명의 은혜를 보여주고, 민중의 과학적 상식을 고취시키며, 이용후생을 이해시켜 장차 산업을 진흥해 국가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했다.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의 개선과 진보를 촉진할 지식 보급을 목적으로 생활과 과학이 많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고대 유물보다 현대 과학기구들을 전시했다. 또한 대중 교육을 위한 강연·강습, 출판 활동과 전시물 수집·관리, 식물·동물·광물에 한정되긴 했지만 표본 수집·전시와 연구활동도 진행되었다.

은사과학관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미화하기 위한 기관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이 이룬 산업의 발전과 과학연구의 진전을 드러내 보였다. 또한 소수였지만 조선인 과학자들도 활동했다. 지질학자 박동길, 화학자 홍인표 등은 과학관 직원으로 근무했고 곤충학자 조복성, 거미학자 백갑용, 조류학자 원홍구 등은 과학관이 수집한 표본을 활용해 연구하거나 수집한 표본을 기증하는 등 과학관과 협력하며 연구를 수행했다.

이에 조선인과 재조선 일본인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보는 시선과 조선인 연구자들의 독자적 과학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양가적 시선이 존재했다고 한다.

식민지배 미화 위한 기관에서 해방 후 재출발

은사과학관은 해방 후 휴관 되었다가 1945년 10월 국립과학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과학자 조복성이 관장으로 부임하며 1946년 2월 8일 재개관한다. 1949년 10월에는 국민의 과학 발명품을 전시하는 행사로 제1회 과학전람회를 개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1950년 9월 6.25 전쟁통에 전소되고 만다.

전후에는 임시사무소를 두고 과학전람회를 개최하며 명맥을 이어오다 1960년 당시 유휴상태로 있었던 창경궁 끝자락에 무상임대 형태로 부지를 확보하고 1962년에 전시실 40평, 영사실 79평짜리의 작은 규모로 재개관한다. 이후 본격적인 국립과학관 건립 협의를 시작하고 1969년에는 업무를 문교부에서 과학기술처로 이관하며 1972년 9월 마침내 국립과학관 상설전시관을, 1979년에는 산업기술관을 개관하게 된다.

<국립과학관 상설전시장 개관 및 관람하는 모습.(1972. 9. 8.)>

<국립과학관 상설전시관의 현재 모습>


국립과학관은 1990년 대전 대덕연구단지 조성의 일환으로 약 5만평 규모의 국립중앙과학관이 대대적으로 건립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국가 수도에 과학관이 있어야 한다는 과학계의 요구로 국립서울과학관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국립중앙과학관의 소속 기관으로 편입되어 명맥을 유지한다.

2008년에는 새로 개관한 국립과천과학관으로 소속이 이관되었고, 2010년에는 광화문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이 결정됨에 따라 본관 건물을 문체부 청사로 내주고 큰 길가의 별관(구 산업기술관)으로 축소·이전하게 된다.

이후 국립서울과학관의 대체로 노원구에 서울시립과학관을 건립하게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하다가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청원으로 어린이 전용 과학관으로 특화·존치하기로 결정되어 2017년 12월 국립어린이과학관의 모습으로 작게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해방 후 과학관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필요

<국립과학관 산업기술관의 현재, 국립어린이과학관>


국립어린이과학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어린 시절 과학관 추억을 이야기하는 과학자들, ‘인체의 신비전’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필자 또한 과학자를 꿈꾸던 어린 시절 국립과학관에서 주최한 ‘학생과학교실’에 참여해서 받은 수료증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국립과학관이 남아 있다. 국립과학관도 우리 역사와 문화 일부다. 해방 후 우리 손으로 만든 국내 최초의 과학관을 과학기술사적 가치가 있는 과학문화 유산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들이하기 좋은 요즘 국립과학관의 역사와 흔적들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 은사기념과학관이 있었던 남산 자락 통감부 터에서 시작해 종묘와 창경궁을 지나 국립어린이과학관까지 천천히 산책해보자.


김기상 (국립어린이과학관, 지구과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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