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17. From 피아니스트 AI to AI 피아니스트: 존재의 방식

블랙소스
2024-03-29

@ playground.com에서 피아노 치는 인공지능으로 이미지 생성 후 편집  


‘AI’라니까 당연히 Artificial Intelligence인 줄 알았다. 금융투자(구 ‘증권’)사에 출근하기 시작하고서 며칠 안 지나 조직도를 보던 중 단연 눈에 뜨인 키워드였다. 당장은 (확률) 편미분 방정식(PDE: (Stochastic) Partial Differential Equation) 등을 푸는 임무를 주로 맡더라도, 당연히, 오래 재직한다면, 그 AI와 호흡하다시피 보낼 직장 생활을 기대(하고 입사)했으니까(이젠, 이를테면 AI PDE Solver가 등장한 시대다). 또 다른 면에서는 당연히 알파고(AlphaGo) 영향도 아니었고. 왜냐하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열리기 10년 전이었으니까. 이후로도 이 조직명은 다양하게 바뀌어 갔지만 AI라는 약어만큼은 꿋꿋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라더니 AI라는 약어는, 풀이가 따로 없는 한, 대중적으로는 ‘조류 독감’으로 더 익숙하던 시절, 그리고 금융권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체 투자’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즉, 조직도에 보이던 약자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Alternative Investment를 줄인 관행이었다. 전통적인 금융 자산 범주를 운용하거나 이에 투자하는 외의 유형을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보니 때로는 합성 또는 구조화된 금융 상품이나 거래에서 그 경계가 불투명해지기도 한다. 전통적인 자산이란 한마디로 주식과 채권을 말하는데 외환 거래와 같은 경우를 고려하면 투자 자산을 분류하기가, 전통이냐 대체냐 정도 자체도 또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이 맥락에서는 부동산은 이견의 여지 없이 대체 투자 자산이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사실을 인식하면서 꽤나 스스로 민망해지기도 했다. 조금만 현실적 감의 메타인지를 발휘했어도 이 AI가 그 AI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여기에는 장기적 시야가 필요한 분야를 공부하던 무의식도 작용한 듯하다. 당장 회사에서 쓸 AI 모델은 마땅하지 않던 시절인데(사실 요즘은 아주 열풍이라, 아주 더 나은가 하면 냉정하게 판단할 때 엄격히는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러하더라도 중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그런 팀을 운영하나 싶어서도, (나중에 깨닫게 된 무지막지한) 그런 오해를 했다. 커다란 기업 조직도 대체로 해마다 크거나 작은 조직 개편을 최소 한 번은 하므로, 필자가 금융업계를 떠난 지 3년도 더 흐른 요즘에는 가파른 변화 속에서 금융사들의 조직 작명 온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적어도 하나 관찰한 현상은, 정말 인공지능을 의미하는 AI가 회사 내부 조직이 아니라 아예 사명에도 쓰일 만큼 전면에 나온 경우니, 그 위상이 제법 달라지긴 했다.

그러함에도, 쓰일 법하면서도 안 보이는 조어는 AI의 A만 따로 뗀 용례다. 가령, Artificial Investment 같은? 인공지능을 적용한 대체 투자라는 의미를 압축한 표현으로는 너무 모호해지거나 어색한가? 아니면, 어째, 수익을 남기기거나 이해하기가 퍽 어려운 투자 방식 같은 뉘앙스마저 풍기기도 한다. 그 정체를 모르기로는, 모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책으로까지 엮어 낸, 필자 느낌에는 기형적인, ‘4차 인간’이라는 주제어와 같은 표현과 그다지 다를 바 없으니, 정의가 참 어정쩡하기 짝이 없는 말이라서도 안 만들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몇몇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젠 AI가 안 딸려 다니는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AI 홍수의 시대다. 과연 인류의 기억이나 일상 속에서 이런 단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심각히 우려될 만큼 혹독한 겨울을 (관점에 따라 적어도 두 차례는) 거치기도 했으니, 세상이 변하기도 많이 변한 셈이다. 더불어서 그만큼 hype나 bubble도 심해졌다(현실과 다르다는 면은 비슷해도, 부작용을 고려할 때, 초기의 진정성 어린 빗나간 기대나 전망과는 결이 심각하게 다르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의 앞 자리에 AI를 가져다 놓으면 어떨까? 

아니면 순서를 바꾸어서 ‘피아니스트 AI?’ (기술적으로 볼 때 후자가 제법 더 적절하지만 대중에겐 전자의 수사가 더 보편적인 듯하다.) 이 지점에서, 꼭 정답을 알고자 하는 기대는 진작에 묻어야 할 정도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한다. 그러니까 ‘피아니스트’란 무엇인가? 피아노 치는 사람, 아니 피아노 치는 기계를 말하는가? 원래는 기계가 피아노를 다룬다는 상상을 하지 못할 적에는 전자의 의미로 통일되었음이 당연하다. 한편 AI는 (적어도 아직은) 어쩌면 기계라는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운 명명 같다. 또한 사고하거나 감각하기보다는 행하는 주체의 관점에서는 robotics의 역할도 의외로 중요하다. 가령, 정말로 건반에 사람이 앉아서 연주하는 광경을 재현할 휴머노이드를 개발할 것인가? Vision AI를 동원하지 않는 한 어느 정도는 또 노부유키와 같은 조건에서 건반을 안 보고 연주해야 할 텐데, 사람이 아닌 ‘기계’한테는 어떤 다른 방식이 가능할까?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묻는다면, 정말 건반을 통해서 연주해야만 피아니스트의 연주일까? 기존의 많은 정의나 기준, 경계가 간섭하면서 얽힌다.


<KAIST 50th INNOVERSARY Ceremony] AI 피아노 공연 AI Piano Performance, 유튜브>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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