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ESC와 함께하는 과학산책] 밀과 글루텐 이야기

김기명
2024-02-28

@삽화 김기명


정부 차원에서 혼분식을 권장하던, 쌀이 한참 모자란 시절이 있었다. 1965년 1인당 연간 11.5kg이었던 밀가루 소비량이 1970년 28.8kg으로 급격하게 증가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밀가루는 이렇게 밥상에 조연급으로 자리하면서 2022년 1인당 소비량이 35.7kg까지 증가했다.

쌀 소비량은 56.7kg로 밀가루는 쌀 소비량의 63%까지 근접했다. 이제 한국인의 식생활에 밀가루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급률은 1% 수준이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자급률을 포함한 식량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이번엔 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밀가루는 ‘도정’이 아니라 ‘제분’이라고 한다. 밀의 배젖은 겨와 분리가 쉽지 않아 쌀 같이 깎아내면서 배젖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통밀을 눌러 부셔서 겨 안의 배젖을 가루를 내어 먹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백색 밀가루는 19세기에 개발된 다중 철제 롤러 덕이다. 개발 이전에는 당연히 혼입된 겨와 눈 때문에 누런 밀가루였다. 색이 개선되고 눈이 제거되어 산패도 방지했으나 밀가루의 엽산, 비타민 B군이 제거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940년대 영양성분이 강화된 밀가루가 개발되었다.


@ 삽화 김기명


점성과 탄성 가진 글루텐 과학상식

밀가루는 잘 알고 있다시피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나눠진다. 이 기준은 밀가루 안의 단백질 함량에 따라 정해진다.

밀의 단백질을 글루텐(gluten)이라고 하는데 반죽이 형성되며 밀의 글리아딘(gliadin)과 글루테닌(glutenin)의 결합으로 생겨난다. 글리아딘은 당길수록 길게 늘어나는 점성의 성질을, 글루테닌은 눌렀을 때 다시 원상복구를 하는 탄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두가지 단백질이 합쳐진 글루텐은 점탄성을 가지고 있다.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 결합하는 이유는 황을 분자 내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분을 넣고 물리적 충격을 가하게 되면 분자 간 이황화결합(-S-S-)을 형성한다. 이 결합은 마치 그물망처럼 되어 극적인 가공 임무를 수행한다. 가령 빵을 만들 때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는 당을 먹고 발효를 일으키고 이산화탄소를 발생한다. 반죽을 발효기 안에 넣은 후 거짓말같이 풍선처럼 불어나는 것을 보면 알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반죽 밖으로 빠지지 못하고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이유는 글루텐의 촘촘한 그물망이 가스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으로 오븐에서 글루텐은 열변성이 일어나고 갇혀있던 공기는 빠져나간다. 빵에 공기구멍들이 숭숭 뚫린 것은 가스의 흔적이다. 이 설명이 와닿지 않는다면 직접 글루텐을 집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밀가루를 적당량의 수분을 넣고 반죽한다. 잡아 늘렸을 때 길게 늘어지지 않고,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빠르고, 두 손으로 넓게 늘려보면 막을 형성하고 잘 끊어지지 않는다면 잘된 반죽이다.

이것을 물에 담가 한참 불린 후에 흐르는 물에 천천히 비비면 전분 입자만 제거된다. 결국 전분들이 다 제거된 이후에 황색 물질이 남게 된다. 마치 씹은 껌과 같은 그러나 더 탄력있는 아주 조그만 덩어리가 남는데 생각보다 질기고 단단하다.

최근 새로운 기조를 타고 주목을 받는 것이 글루텐프리(gluten free) 식품이다. 글루텐프리 식품은 식품에 글루텐을 함유하지 않거나,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준으로만(일반적으로 20ppm이하) 함유하는 식품으로 정의한다(aT 보고서). 세계적으로 약 10조원의 시장규모(2021년, aT 보고서)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글루텐프리 식품시장은 아직 태동기라고 할 수 있으나 몇몇 고가 제품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글루텐프리 식품, 건강식으로 과포장

글루텐프리 식품이란 엄격한 제한 식단에 가깝다. 유전적 감수성이 있는 경우 글루텐에 의해 유발된 비정상적 점막 면역작용에 의한 셀리악 병(celiac disease)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한국인에겐 병변 사례가 흔치 않은 셀리악병임에도 글루텐프리 식품이 마치 건강식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성은 실제 한국인이 유의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추정은 되나 아직 연구는 많지 않다.

글루텐프리 식품개발에 관한 많은 연구 논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거의 셀리악병을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성과 혼동해 쓰고 있고 기업들이 고가의 글루텐프리 식품을 제조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발전적인 트렌드가 아닌 소비자가 혼동할 수 있는 트렌드에 편승한 연구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김기명 전 호남대 교수, 식품공학
김기명 (전 호남대 교수, 식품공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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