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기명
2023년 노벨 화학상은 양자점(quantum dot)을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높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가진 국내 회사 TV 이름에도 양자점이 있다. 양자역학과 양자점은 무슨 관계이며, TV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지구를 도는 원형궤도의 인공위성을 생각해보자. 궤도의 크기는 목적에 따라 정할 수 있다. 궤도를 정하면 속력이 산출되고 질량을 알면 운동에너지가 정해진다. 거꾸로 어떤 질량을 가진 인공위성의 운동에너지를 정하면 궤도 크기도 정해진다. 인공위성의 운동에너지는 궤도와 질량 사이의 관계식을 만족하면 어떤 값이든 가능하다. 물론 궤도가 우주공간에 있을 정도로 커야 하겠지만.
@삽화 김기명
이제 전자가 양성자 주위를 돌고 있는 수소원자를 생각해보자. 지구가 인공위성을 끄는 힘은 중력이고, 양성자가 전자를 끄는 힘은 전기력이라는 것만 서로 다르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알려주는 것은 여기서 전자는 특별히 정해진 에너지 값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소원자와 같은 미시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마치 인공위성 궤도가 1만km, 혹은 2만km 등만 가능하고, 1만5000km 같은 값은 가질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상식으로 이해 안되는 일이 왜 원자에서 일어나는지 연구하면서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양자역학(量子力學)이라는 용어는 에너지 양(量)이 작은 단위(子)가 있어 더 작은 양으로는 나눌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 주변의 물질은 대부분 1023개 정도의 아주 많은 원자가 뭉친 덩어리다. 물질이 뭉치는 것은 원자에 있는 전자들이 서로 잡아당기기 때문인데, 같은 음전하를 띤 전자들은 서로 밀칠 것 같지만 실제 계산해보면 잡아당겨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 대부분 더 안정된 상태다. 화학반응이 저절로 일어나는 이유다. 고체물리학은 일상에 보이는 이런 덩어리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인데 기본적 도구가 양자역학이다.
크기 따라 성질 달라지는 양자점
원자에서 특정한 값만 가능한 전자의 에너지는 덩어리 물질 안에서는 거의 아무 값이나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원자의 성질도 조금 유지하는데, 반도체와 같은 물질에서 관찰되는 에너지 간극이 그것이다. 인공위성의 비유를 에너지 간극에 적용해보면 1만km와 2만km 사이의 궤도는 불가능하고 다른 모든 궤도가 가능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간극에 해당하는 에너지는 전자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이를 밴드갭이라고 부른다.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발광 다이오드(LED)와 같은 광학 반도체 물질에 전기를 흘리거나 빛을 쬐면 빛이 방출되는데 이 빛의 파장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바로 밴드갭이다.
그런데 원자가 한 100개에서 1만개 정도만 뭉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무한대에 가까운 1023개의 원자들이 뭉친 덩어리 물질과 다르고 개별 원자와도 다르다. 물리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작은 원자 덩어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덩어리 물질을 설명하는 이론이나 개별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이 모두 잘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노미터 크기의 이런 물질 알갱이를 양자점이라 한다.
양자점의 성질은 크기에 따라서 다르다. 크기가 커지면 덩어리 물질처럼 변하고 작아지면 원자 혹은 분자의 성질에 접근한다. 같은 물질이지만 덩어리 크기에 따라 방출하거나 흡수하는 빛의 색깔이 달라진다. 밴드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덩어리 물질은 구조나 구성원자가 달라져야 밴드갭이 변하는데 양자점은 뭉친 원자 개수를 조절하면 밴드갭이 달라진다. 액정표시패널을 사용하는 TV의 백라이트에서 백색광을 흡수해 순수한 빨강 초록 파랑으로 바꿔주는 각각 크기가 다른 양자점을 넣은 것이 양자점 TV다.
기초과학연구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
노벨 화학상은 양자점의 광학적 성질을 파악한 초기 연구자들, 그리고 크기가 일정한 양자점을 만드는 방법을 창안한 학자들에게 수여되었다. 양자점을 이용한 연구는 TV의 색깔을 좀 더 화려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양자점 자체에 전류를 흘려 OLED와 유사하지만 수명이 더 긴 디스플레이를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양자점을 단백질이나 DNA 같은 생체분자에 붙여 이들의 결합 양상을 나노미터 정확도로 관찰하는 프렛(FRET)이라는 기술도 있다. 양자점들이 가까이 가면 방출되는 빛의 색깔이 변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양자점은 크기가 아주 작은 나노미터 수준의 물질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양자역학적 현상을 연구하다가 나왔다. 물질이 아주 작아져서 영차원의 점처럼 되거나 일차원의 선처럼 되면 어떻게 되는지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됐는데, 이후 예기치 못한 응용 분야가 나타났고 커다란 산업 기술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첨단 기초과학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박용섭 (경희대 교수, 물리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
#ESC와함께하는과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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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김기명
2023년 노벨 화학상은 양자점(quantum dot)을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높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가진 국내 회사 TV 이름에도 양자점이 있다. 양자역학과 양자점은 무슨 관계이며, TV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지구를 도는 원형궤도의 인공위성을 생각해보자. 궤도의 크기는 목적에 따라 정할 수 있다. 궤도를 정하면 속력이 산출되고 질량을 알면 운동에너지가 정해진다. 거꾸로 어떤 질량을 가진 인공위성의 운동에너지를 정하면 궤도 크기도 정해진다. 인공위성의 운동에너지는 궤도와 질량 사이의 관계식을 만족하면 어떤 값이든 가능하다. 물론 궤도가 우주공간에 있을 정도로 커야 하겠지만.
@삽화 김기명
이제 전자가 양성자 주위를 돌고 있는 수소원자를 생각해보자. 지구가 인공위성을 끄는 힘은 중력이고, 양성자가 전자를 끄는 힘은 전기력이라는 것만 서로 다르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알려주는 것은 여기서 전자는 특별히 정해진 에너지 값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소원자와 같은 미시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마치 인공위성 궤도가 1만km, 혹은 2만km 등만 가능하고, 1만5000km 같은 값은 가질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상식으로 이해 안되는 일이 왜 원자에서 일어나는지 연구하면서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양자역학(量子力學)이라는 용어는 에너지 양(量)이 작은 단위(子)가 있어 더 작은 양으로는 나눌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 주변의 물질은 대부분 1023개 정도의 아주 많은 원자가 뭉친 덩어리다. 물질이 뭉치는 것은 원자에 있는 전자들이 서로 잡아당기기 때문인데, 같은 음전하를 띤 전자들은 서로 밀칠 것 같지만 실제 계산해보면 잡아당겨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 대부분 더 안정된 상태다. 화학반응이 저절로 일어나는 이유다. 고체물리학은 일상에 보이는 이런 덩어리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인데 기본적 도구가 양자역학이다.
크기 따라 성질 달라지는 양자점
원자에서 특정한 값만 가능한 전자의 에너지는 덩어리 물질 안에서는 거의 아무 값이나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원자의 성질도 조금 유지하는데, 반도체와 같은 물질에서 관찰되는 에너지 간극이 그것이다. 인공위성의 비유를 에너지 간극에 적용해보면 1만km와 2만km 사이의 궤도는 불가능하고 다른 모든 궤도가 가능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간극에 해당하는 에너지는 전자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이를 밴드갭이라고 부른다.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발광 다이오드(LED)와 같은 광학 반도체 물질에 전기를 흘리거나 빛을 쬐면 빛이 방출되는데 이 빛의 파장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바로 밴드갭이다.
그런데 원자가 한 100개에서 1만개 정도만 뭉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무한대에 가까운 1023개의 원자들이 뭉친 덩어리 물질과 다르고 개별 원자와도 다르다. 물리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작은 원자 덩어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덩어리 물질을 설명하는 이론이나 개별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이 모두 잘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노미터 크기의 이런 물질 알갱이를 양자점이라 한다.
양자점의 성질은 크기에 따라서 다르다. 크기가 커지면 덩어리 물질처럼 변하고 작아지면 원자 혹은 분자의 성질에 접근한다. 같은 물질이지만 덩어리 크기에 따라 방출하거나 흡수하는 빛의 색깔이 달라진다. 밴드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덩어리 물질은 구조나 구성원자가 달라져야 밴드갭이 변하는데 양자점은 뭉친 원자 개수를 조절하면 밴드갭이 달라진다. 액정표시패널을 사용하는 TV의 백라이트에서 백색광을 흡수해 순수한 빨강 초록 파랑으로 바꿔주는 각각 크기가 다른 양자점을 넣은 것이 양자점 TV다.
기초과학연구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
노벨 화학상은 양자점의 광학적 성질을 파악한 초기 연구자들, 그리고 크기가 일정한 양자점을 만드는 방법을 창안한 학자들에게 수여되었다. 양자점을 이용한 연구는 TV의 색깔을 좀 더 화려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양자점 자체에 전류를 흘려 OLED와 유사하지만 수명이 더 긴 디스플레이를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양자점을 단백질이나 DNA 같은 생체분자에 붙여 이들의 결합 양상을 나노미터 정확도로 관찰하는 프렛(FRET)이라는 기술도 있다. 양자점들이 가까이 가면 방출되는 빛의 색깔이 변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양자점은 크기가 아주 작은 나노미터 수준의 물질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양자역학적 현상을 연구하다가 나왔다. 물질이 아주 작아져서 영차원의 점처럼 되거나 일차원의 선처럼 되면 어떻게 되는지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됐는데, 이후 예기치 못한 응용 분야가 나타났고 커다란 산업 기술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첨단 기초과학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박용섭 (경희대 교수, 물리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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