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기후위기 이야기 #13 원자력은 과연 경제적일까?

박재용
2023-09-15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이후 완전히 사멸하는 존재였던 원자력 발전이 기후위기에 의해 회생의 기운을 보이더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금 더 살려놓은 형국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과 함께 하는 기후 위기 극복’이란 오래된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요.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대규모 원전은 이미 사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탈원전을 이야기했던 주장들은 거칠게 따져보면 결국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날 때의 끔찍함이고 둘은 폐연료봉 문제입니다. 저로선 사고의 끔찍함도 문제지만 사실 폐연료봉을 어찌 처리할 지가 탈원전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글에서는 기후위기 시대,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함께 가는 것이 경제적이냐에 대해 주로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전 문제의 핵심은 폐연료봉 처리입니다. 우라늄은 그냥 놔둬도 핵분열을 합니다. 하지만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핵분열 속도는 대단히 느리죠. 이렇게 해서는 전기를 규모있게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라늄을 농축해서 연료봉을 만들죠. 모여 있는 우라늄은 핵분열과정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통해 연쇄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를 통해 단위 시간당 높은 열에너지를 생산하고 이 열에너지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듭니다. 하지만 연료봉의 우라늄은 계속 핵분열을 통해 다른 원소가 되니 시간이 지나면 농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 쓴 연료봉은 꺼내고 새 연료봉을 넣어줍니다. 그런데 이제 폐기해야할 연료봉에도 농도는 낮지만 우라늄이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더구나 핵분열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방사성 물질도 같이 있지요. 루테늄-106, 바륨-140, 세륨-144, 루테늄-103, 세슘-137 등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계속 핵분열을 하고, 치명적인 방사선과 함께 열에너지도 내놓습니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계속 온도가 올라가고 결국 녹아버립니다. 이런 현상을 멜트 다운이라 하지요. 


폐연료봉을 모아놓은 장소에서 연료봉이 녹아버릴 정도가 되면 연료봉을 보관하던 용기도 같이 녹습니다. 연료봉들이 녹아 모이면 더 빠르게 핵분열이 일어나고 마침내 폭발하게 됩니다. 후쿠시마 원전이 거의 이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실제로 폭발한 건 폐연료봉이 아니라 수소 가스입니다. 핵분열과 높은 온도로 인해 수소가 밀폐된 공간에 들이찼고 폭발했던 거죠. 우리가 인터넷에서 보는 후쿠시마의 폭발 장면은 바로 이겁니다. 


따라서 이 폐연료봉을 안전하게 저장할 장소가 필요한 건 당연하죠. 하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폐연료봉을 저장할 장소를 건설 중인 곳은 핀란드가 유일합니다. 핵발전소가 만들어진지 60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물론 우리나라도 폐연료봉을 저장할 장소-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소라고 한다-를 건설한 곳도, 건설하고 있는 곳도 없습니다. 모두 계획은 있습니다. 하지만 건설할 지역도 정하지 못하고 있죠. 아 프랑스는 장소는 정했다고도 하더군요.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폐연료봉 말고도 방사성을 띠는 물질들이 나오는데 이를 중저준위 핵폐기물이라고 합니다. 폐연료봉에 비하면 위험도는 훨씬 낮습니다. 내놓는 방사선 양도 훨씬 적고, 반감기도 훨씬 짧지요. 이를 처리하는 곳이 경주에 있는데 이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는데도 한참 걸렸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었습니다. 그러니 고준위 핵폐기물, 즉 폐연료봉을 처리하는 곳을 정하고 실제 건설하기까지는 훨씬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계획에 따르면 시설 부지를 2028년까지 확보할 예정이고 2042년까지 중간 저장시설과 인허가용 URL을 건설하고 실증 연구를 진행하며 2052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해서 2053년에 가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미 가동한 원전이 있고 폐연료봉이 각 원전마다 가득 들이차 있으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부도 그리고 관련 전문가들도 저 타임 스케쥴이 과연 지켜질 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더 많이 짓고 거기서 전기를 생산하겠다면 당연히 폐연료봉도 더 많이 나올 터인데 이는 폐기물 처리장의 규모가 기존의 서너 배 이상 더 커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새로 원전을 지으려면 이런 상황부터 먼저 점검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재생에너지와 함께 하는 원전 시나리오의 경제성에 대해 대략 따져보겠습니다. 현재 원자력 발전은 전체 발전량에서 30% 정도의 전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50년까지 전력 소비량은 현재의 2.5~3배 정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에 지어진 원자력발전소 중 수명을 다한 발전소는 폐로의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원자력발전이 현재 수준, 즉 전체 전력의 30% 정도를 담당하려면 현재의 2.5~3배 정도 더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서 원자력발전소를 한 25기에서 30기 정도 더 지어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그 정도를 유지하기 위해 원전을 계속 짓는다는 것에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굳이 위험하고 말도 많은 원전을 주요 발전원으로 기능하려면 전체 전력의 절반 정도를 감당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이런 경우 원전을 약 50기 정도 더 지어야 합니다. 대략 25기에서 50기 정도의 원전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가능할까요? 우선 부지를 선정하는 문제부터 쉽지 않을 겁니다. 원전 부지는 일단 해안가라야 합니다. 원전에서 나오는 열을 식힐 냉각수가 다량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업활동이 활발한 곳은 제외해야겠죠. 냉각수가 다량으로 나오면 주변 생태계가 망가져 어업 활동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쓰나미나 해일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해안이지만 고지대라야 합니다. 즉 해안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곳이 적당하죠. 여기에 인구밀집지역을 피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갖춘 해안은 일단 남해와 황해에는 없습니다. 남해와 황해는 연안 대부분이 어장이고 양식장이죠. 선택지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사이의 해안 일부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강릉 주변, 휴전선에 가까운 강원도 북부지역을 피해야 합니다. 결국 동해에서 영덕까지 동해시, 삼척시, 울진군, 영덕군 네 곳이 가능한 후보지입니다. 과연 이곳에 사는 시민들이 혼쾌히 혹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까요? 그것도 하나 짓는 게 아니라 수십 개를 지어야 하는데. 


두 번째로 원전 건설에 걸리는 시간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과 비교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짓는데 (외국은 원전 하나 짓는데 20년도 더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래도 부지 선정이 끝난 후 10년이 걸립니다. 지금 부지 선정이 끝나도 2033년에나 가동이 가능한 거죠. 그렇다고 한꺼번에 20기를 지을 수도 없습니다. 매년 두세 기씩 짓는 식으로 늘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2040년까지도 다 지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죠. 더구나 이는 가장 빠른 경로를 잡은 것이고 부지 선정에 몇 년 걸리면 완공되어 전력을 만드는 건 2030년대 후반에나 시작할 수 있고 태반은 2040년 중후반에야 가능합니다. 


세 번째로 원전 하나 짓는데 드는 돈이 11조원 정도 됩니다. 최저로 25기 정도 지어도 260조 가량이 드는 거죠. 이 정도 비용을 들여야 한다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장치에 투자를 해도 충분한 성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태양광 발전이나 에너지 저장장치 등에는 민간 부문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지만 원전은 온전히 한국원자력수력발전 단독으로 돈을 대는 구조죠.


그럼 대규모로 원전 짓는 건 힘들다고 하고 2~3년에 2기 정도씩(원전은 한 번에 두 기씩 짓는 것이 보통입니다.) 한 10기 정도만 지으면 어떨까요? 우선 이런 정도로는 현재의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총 발전양의 30%는 불가능하고 2050년이면 20%대 이하로 떨어집니다. 건설사나 관련 업체들이야 좋겠지만 이런 정도라면 수입수소 등으로 기저부하를 해결하는 방향이 훨씬 바람직할 겁니다.


결국 원전은 안전 문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도 확대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원전을 몇 기 정도 짓는 걸로는 전체 전력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고 원전 생태계(이걸 생태계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지만)를 유지하기 힘듭니다. 유일한 대안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외국 원전 건설에 참여하는 것인데 현재 원전을 의미 있게 확장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입니다. 원전 관련업계는 차라리 원전을 폐쇄하는 기술을 좀 더 발전시켜 해외 원전 폐로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기존 고준위폐기물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현재 새롭게 이슈가 되는 소형모듈원전(SMR)이 기존 원전의 대안으로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 또한 경제적 이유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다고 보아야합니다. SMR이 국내 전력에서 의미있는 비율을 차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데 그 또한 다음 기회에 다뤄보겠습니다.


출처: '녹색성장 말고 기후정의' (박재용 저 | 뿌리와이파리) 내용 중  


작성자: 박재용 (전업 작가, ESC 지구환경에너지위원회 부위원장)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곳, 과학과 인간이 만나는 곳에 대한 글을 주로 썼습니다. 지금은 과학과 함께 사회문제에 대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글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출간된 책으로는 '불평등한 선진국',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통계 이야기',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웰컴 투 사이언스 월드', '과학 VS 과학' 등 20여 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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