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참 많은 남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질릴 정도로 남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던 대학로에 혜성처럼 등장한 뮤지컬 <마리퀴리> 이후 나는 몇 년간 여성 학자의 이야기를 누군가 뮤지컬로 만들어주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정말 잊을만하면 경전이라도 외듯 누가 한 번만 만들어달라고 중얼거리기를 어언 4년 째. 드디어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5번 중 몇 번 볼 수 있을까 정도의 고민은 있어도. 마침 ESC 과학문화위원회 단체 채팅방에서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갈 사람들을 모집해서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냉큼 신청했다. 오랜만에 반가운 분들을 만나뵙기도 했거니와 창작 초연 뮤지컬을, 특히 그토록 고대하던 인물을 다룬 뮤지컬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과 두근거림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 반 즈음의 공연과 '관객과의 대화' 행사가 끝난 뒤에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학림다방으로 이동해 다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실제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생애부터 공연 연출에 이르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양한 주제들이 쏟아졌다. 같은 작품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언제나 귀중하다.

@ 뮤지컬 다크레이디X프랭클린 포스터
"재미있지 않나요? X선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요."
<다크레이디X프랭클린>이 그려내는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조금은 고지식하고 깐깐하지만 빛나는 사람이다. 확실함을 말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고 가능성에 안주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이 그리는 로잘린드는 참 이상적인 과학자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시선이나 편견은 상관하지 않고 연구에만 골몰한 과학자의 모습 말이다. 그 모습으로 인해 로잘린드는 영웅으로 격상되며 눈에 띌 정도로 이상적인 로잘린드 옆에서 경쟁과 자금 문제를 말하는 왓슨과 윌킨스는 되려 속물적이어보이기까지 한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로잘린드는 윌킨스와 왓슨, 고즐링이 조급해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는 우리의 연구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일관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로잘린드의 연구들이 '좋은 사진'을 찍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고 생각할 때, 실제로도 그는 DNA의 구조를 밝히는 것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주제 외에 다른 것은 상관없는 듯 행동하는 그는 오히려 과학자에게 익숙한 과학자의 모습과 가깝다. 함께 공연을 보았던 분들도 이 부분에 의문을 가졌다. 로잘린드도 자신이 노벨상을 빼앗겼다고 생각할까? 로잘린드의 연구는 X선 회절사진을 촬영하는 것이었지, DNA의 구조 규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비가 두려운가요?"
작품에 나오는 남성들은 숨쉬듯 성희롱적 발언을 일삼는다. 연구실의 총책으로 나오는 모리스 윌킨스와 제임스 왓슨이 특히 그렇다. 고즐링이 나머지 둘에 비해 부각되지 않는 것은 로잘린드가 우선은 그보다 상급자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로잘린드를 처음 만난 윌킨스는 '치마를 입으신 분이 오실 줄은 몰랐다'며 한참이나 로잘린드를 훑어보고 왓슨은 로잘린드의 외모와 성격을 평가하며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여자'라고 말한다. 이 부분이 왓슨을 재수없는 인물로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면 아주 성공적이다. 끝나자마자 모두 입을 모아 왓슨이 재수없다고 외쳤으니까. 남성들의 언어 안에서 그는 계속해서 대상화되고 타자화된다. 이렇게 그가 촬영한 사진보다도 많은 벽에 부딪히는 로잘린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나아가려는 인물이다.
로잘린드가 겪는 고난은 극 중에서 '비'로 자주 비유된다. 왓슨이 '여자 화장실은 밖으로 나가서 15분 거리에 있던데 비가 많이 내리더라'고 하며 로잘린드를 희롱하지만 로잘린드는 비를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왓슨에게 '당신은 비가 두렵냐'고 묻는 사람이다. 이 장면의 로잘린드는 분명 단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숨이 막힐 듯 쏟아지는 폭우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사람이 보여줄 수밖에 없던 모습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여성으로써 하지 않을 수는 없다.

@ 뮤지컬 다크레이디X프랭클린 소통 프로그램
재미있었던 점은 윌킨스를 제외한 모두가 어떤 면에서 한 번씩은 편견을 마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고즐링은 대학원생으로써 다른 이들에 비해 계급적 약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왓슨은 어린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윌킨스에게 '애송이 미국인'으로 지칭된다. 윌킨스를 제외하면 모두가 한 번씩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편견을 마주해야 함에도 그들은 그 정체성을 말미암아 연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공유할 수도 있었던 왓슨과 로잘린드가 주로 왓슨의 성차별적 편견으로 인해 극 내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들이 된다는 사실은 제법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충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넘버가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팩션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창작 초연 공연이 그렇듯 스토리나 연출에 아쉬운 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함께 공연을 보았던 분들 중 어떤 분은 음향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시기도 했고, 또 다른 분은 이야기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하시기도 했다. 나는 최근 여성 주연의 뮤지컬들을 보다 와서인지는 몰라도 캐릭터의 분량이 눈에 들어왔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주연의 작품이라기에는 조연들, 특히 왓슨의 비중이 지나치게 많은 감이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왓슨-윌킨스-나중에는 고즐링까지 포함되는 남성 카르텔이 가시화되는 효과는 있었으나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보러 간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로잘린드에게 바치는 한 송이 흰 국화꽃같았던 이 공연이 다시 올라오기를 바라게 된다. 쏟아지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로잘린드의 목소리를 조금 더 담아서. 배우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객석에 앉은 내가 바뀌면 '그' 공연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다음에 돌아올 모습이 가장 기대되는 공연 중 하나이다.
쏟아지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로잘린드의 굳셈을 길게 그리워하며.
#과학을시민의품으로 #과학기술속젠더
세상에는 참 많은 남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질릴 정도로 남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던 대학로에 혜성처럼 등장한 뮤지컬 <마리퀴리> 이후 나는 몇 년간 여성 학자의 이야기를 누군가 뮤지컬로 만들어주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정말 잊을만하면 경전이라도 외듯 누가 한 번만 만들어달라고 중얼거리기를 어언 4년 째. 드디어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5번 중 몇 번 볼 수 있을까 정도의 고민은 있어도. 마침 ESC 과학문화위원회 단체 채팅방에서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갈 사람들을 모집해서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냉큼 신청했다. 오랜만에 반가운 분들을 만나뵙기도 했거니와 창작 초연 뮤지컬을, 특히 그토록 고대하던 인물을 다룬 뮤지컬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과 두근거림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 반 즈음의 공연과 '관객과의 대화' 행사가 끝난 뒤에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학림다방으로 이동해 다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실제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생애부터 공연 연출에 이르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양한 주제들이 쏟아졌다. 같은 작품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언제나 귀중하다.
@ 뮤지컬 다크레이디X프랭클린 포스터
<다크레이디X프랭클린>이 그려내는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조금은 고지식하고 깐깐하지만 빛나는 사람이다. 확실함을 말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고 가능성에 안주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이 그리는 로잘린드는 참 이상적인 과학자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시선이나 편견은 상관하지 않고 연구에만 골몰한 과학자의 모습 말이다. 그 모습으로 인해 로잘린드는 영웅으로 격상되며 눈에 띌 정도로 이상적인 로잘린드 옆에서 경쟁과 자금 문제를 말하는 왓슨과 윌킨스는 되려 속물적이어보이기까지 한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로잘린드는 윌킨스와 왓슨, 고즐링이 조급해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는 우리의 연구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일관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로잘린드의 연구들이 '좋은 사진'을 찍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고 생각할 때, 실제로도 그는 DNA의 구조를 밝히는 것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주제 외에 다른 것은 상관없는 듯 행동하는 그는 오히려 과학자에게 익숙한 과학자의 모습과 가깝다. 함께 공연을 보았던 분들도 이 부분에 의문을 가졌다. 로잘린드도 자신이 노벨상을 빼앗겼다고 생각할까? 로잘린드의 연구는 X선 회절사진을 촬영하는 것이었지, DNA의 구조 규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품에 나오는 남성들은 숨쉬듯 성희롱적 발언을 일삼는다. 연구실의 총책으로 나오는 모리스 윌킨스와 제임스 왓슨이 특히 그렇다. 고즐링이 나머지 둘에 비해 부각되지 않는 것은 로잘린드가 우선은 그보다 상급자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로잘린드를 처음 만난 윌킨스는 '치마를 입으신 분이 오실 줄은 몰랐다'며 한참이나 로잘린드를 훑어보고 왓슨은 로잘린드의 외모와 성격을 평가하며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여자'라고 말한다. 이 부분이 왓슨을 재수없는 인물로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면 아주 성공적이다. 끝나자마자 모두 입을 모아 왓슨이 재수없다고 외쳤으니까. 남성들의 언어 안에서 그는 계속해서 대상화되고 타자화된다. 이렇게 그가 촬영한 사진보다도 많은 벽에 부딪히는 로잘린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나아가려는 인물이다.
로잘린드가 겪는 고난은 극 중에서 '비'로 자주 비유된다. 왓슨이 '여자 화장실은 밖으로 나가서 15분 거리에 있던데 비가 많이 내리더라'고 하며 로잘린드를 희롱하지만 로잘린드는 비를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왓슨에게 '당신은 비가 두렵냐'고 묻는 사람이다. 이 장면의 로잘린드는 분명 단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숨이 막힐 듯 쏟아지는 폭우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사람이 보여줄 수밖에 없던 모습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여성으로써 하지 않을 수는 없다.
@ 뮤지컬 다크레이디X프랭클린 소통 프로그램
재미있었던 점은 윌킨스를 제외한 모두가 어떤 면에서 한 번씩은 편견을 마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고즐링은 대학원생으로써 다른 이들에 비해 계급적 약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왓슨은 어린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윌킨스에게 '애송이 미국인'으로 지칭된다. 윌킨스를 제외하면 모두가 한 번씩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편견을 마주해야 함에도 그들은 그 정체성을 말미암아 연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공유할 수도 있었던 왓슨과 로잘린드가 주로 왓슨의 성차별적 편견으로 인해 극 내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들이 된다는 사실은 제법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충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넘버가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팩션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창작 초연 공연이 그렇듯 스토리나 연출에 아쉬운 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함께 공연을 보았던 분들 중 어떤 분은 음향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시기도 했고, 또 다른 분은 이야기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하시기도 했다. 나는 최근 여성 주연의 뮤지컬들을 보다 와서인지는 몰라도 캐릭터의 분량이 눈에 들어왔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주연의 작품이라기에는 조연들, 특히 왓슨의 비중이 지나치게 많은 감이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왓슨-윌킨스-나중에는 고즐링까지 포함되는 남성 카르텔이 가시화되는 효과는 있었으나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보러 간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로잘린드에게 바치는 한 송이 흰 국화꽃같았던 이 공연이 다시 올라오기를 바라게 된다. 쏟아지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로잘린드의 목소리를 조금 더 담아서. 배우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객석에 앉은 내가 바뀌면 '그' 공연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다음에 돌아올 모습이 가장 기대되는 공연 중 하나이다.
쏟아지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로잘린드의 굳셈을 길게 그리워하며.
박윤지
과학커뮤니케이터. 활자 너머, 그 곳에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로 과학을 말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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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시민의품으로 #과학기술속젠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