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우주 끝엔 무엇이 있을까

박인규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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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김기명

우주의 끝은 어딜까? 끝이 있다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주에 시작은 있었을까? 우주가 태어나기 전엔 무엇이 있었을까? 심오하고 거창한 질문같지만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궁금증이기도 하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우주의 끝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굳이 천문대에 가서 힘들게 관측하지 않아도 된다. 간단히 인터넷만 뒤지면 충분하다. 천문학자들이 띄워 놓은 허블망원경이 있고, 제임스 웹 망원경도 있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은 모두가 우리 은하 속에 있는 이웃 별들이다. 은하수 너머 보이는 것들은 별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 은하들이다.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별과 은하들이 듬성듬성 있어서 그렇다. 물론 인간의 눈으로 봐서 그렇지 망원경으로 보면 꽤나 많은 별과 은하들이 밤하늘을 채우고 있다.


망원경은 당연히 별이나 은하 같은 천체를 찍기 위해 사용된다. 이런 천체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꽤나 긴 노출시간이 필요하다. 허블망원경이나 제임스 웹 망원경 같이 수십조원이 들어간 망원경을 쓰려면 촬영시간이 곧 돈이다. 게다가 찍고 싶은 천체는 많은데 망원경은 한정되어 있으니 무엇을 찍어야 할지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니 어떤 천체를 찍을지 또 얼마나 오래 찍을지는 매우 치밀하게 계획되고 신중하게 결정된다.


@ 2014년에 발표된 허블 울트라 딥 필드(Hubble Ultra Deep Field). 밤하늘에 모래알보다 작은 공간을 오랫동안 관측해 얻은 사진이다. 1만여개의 은하들이 들어 있다. 가까운 은하부터 아주 먼 은하까지 한장에 다 들어 있다. 아주 먼 은하는 그 만큼 더 오래전 은하의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 NASA, ESA, H. Teplitz and M. Rafelski (IPAC/Caltech), A. Koekemoer (STScI), R. Windhorst (Arizona State University), and Z. Levay (STScI)


딥필드! 깊숙이 들여다보자


만약 이런 비싼 망원경을 가지고 별도 은하도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빈 캄캄한 곳을 그냥 찍어보자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것도 자그마치 열흘 동안이나. 이런 엉뚱한 생각은 놀랍게도 허블망원경 팀에 의해 실행된다. 1995년 허블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던 로버트 윌리암스의 뛰어난 혜안 덕분이었다.


@ 허블과 제임스 웹이 같은 곳을 찍은 딥 필드 사진. 제임스 웹이 훨씬 더 선명할 뿐 아니라 훨씬 많은 은하들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Space_Science/Webb/Webb_delivers_deepest_image_of_Universe_yet


허블망원경 팀은 가급적 별이나 은하가 없는 깜깜한 곳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작은 영역을 향해 망원경의 초점을 맞췄다. 열흘 동안 찍은 사진에는 실로 놀라운 광경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다양하게 생긴 은하들이 수없이 많이 찍혀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은하로 가득 찬 공간이었던 것이다. 다른 장소를 찍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밤하늘은 온통 은하들로 빽빽이 차있었다.


허블망원경이 찍은 이 작은 영역의 사진은 시간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멀리 있는 은하들은 그만큼 과거에 존재했던 은하다. 그래서 과거를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사진을 허블딥필드(Hubble Deep Field)라 부른다.


@ 플랑크 망원경이 찍은 우주배경복사의 모습. 빅뱅 후 38만년이 지난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주 배경복사는 2.7K 흑체복사로부터 나온 빛으로 빅뱅 후 충분히 식은 우주에서 출발해 우주 팽창과 함께 파장이 길어진 복사선이다. 출처: https://planck.cf.ac.uk/all-sky-images/


허블딥필드에 찍힌 은하 중 가장 먼 은하는 자그마치 120억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허블망원경을 뒤이은 제임스 웹 망원경도 딥필드 사진을 보내왔다. 2022년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공개한 이 사진에는 허블망원경이 찍은 것보다 더 멀리 떨어진 은하들도 들어 있었다. 지금까지 제임스 웹이 찾아낸 가장 오래된 은하는 우주가 생겨난 후 3억2000만년 만에 형성된 것이다.


@ 관측가능한 우주. 지구를 중심으로 가까이는 태양계가 보이고, 은하수 너머는 많은 은하들이 보인다. 그 보다 더 멀리는 은하들이 스폰지 같이 뭉쳐 있는 우주의 거대 구조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관측 가능한 가장 먼 곳에는 우주배경복사가 있다. 그 뒤 는 우주의 끝으로 빅뱅의 순간이다. 출처: Wikipedia,?Pablo Carlos Budassi


딥필드 사진을 지구를 시추하는 것에 비유한다면, 지구 중심까지 시추해 얻은 긴 막대기는 빅뱅부터 현재까지를 찍은 딥필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지표면은 현재 내가 있는 시공간이고 지구 중심은 빅뱅의 순간에 해당될 것이다. 시추는 서울에서 하든 뉴욕에서 하든 상관없다. 시추의 맨 끝은 항상 지구의 중심이다. 딥필드 사진도 마찬가지다. 밤하늘 어디를 쳐다보든 맨 끝은 항상 빅뱅의 순간이다. 결국 우주의 끝을 쳐다본다는 것은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구 끝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측이란 결국 빛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은 빅뱅 후 38만년 후의 모습이다. 이때부터 빛이 자유롭게 우주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빛은 지금도 우주 속에 가득 차있고 우리는 이를 우주배경복사라 부른다. 지구 어디를 파 내려가도 결국 내핵을 만나듯이 밤하늘도 어디를 쳐다봐도 우주배경복사가 보이고 이는 38만년 된 어린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의 끝은 마치 무한대로 펼쳐진 광활한 공간같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을 고려하면 그 무한대 같은 공간은 원래 한점에서 시작(빅뱅)했다. 따라서 우주의 끝을 본다는 것은 우주의 탄생 시점을 관찰하는 것이다.


우주 끝엔 어린 우주의 모습이 있다


우주를 본다는 것은 북극에서 남극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방향으로 보든 북극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은 남극이다. 그곳은 무한대로 넓은 곳이 아니라 한점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는 우주의 끝은 무한히 넓은 공간이 아니라 남극대륙 같은 작은 우주의 모습이고 남극은 빅뱅의 순간에 해당된다.


지금은 남극과 북극이 우주의 팽창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빅뱅의 순간에는 원래 한곳이었다. 결국 우주의 끝엔 우주 탄생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얘기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ESC 회원)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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