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수가 한 치라도 달랐다면?
존재의 이유를 찾는 흥미진진한 사고 실험
세상은 왜 다른 모습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모습일까? 왜 우리가 살기 좋게 되어 있을까? 과학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신이 아니라 우주를 만든 보편적인 수, 즉 상수에서 찾는다. 상수가 어떻게? 이를 위해 김범준은 거꾸로 시작한다. 바로 우주를 구성하는 상수가 한 치라도 달랐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하는 사고 실험을 펼치는 것. 만약 빛의 속도가 내가 걷는 속도, 즉 시속 5km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력 상수가 100배나 크다면? 플랑크 상수가 관찰 가능한 거시적인 크기라면? 볼츠만 상수가 10배가 된다면?
광속이 시속 5km라면 이것은 역시나 우주의 모든 존재가 따라야 할 엄격한 제한 조건이어서 내가 시속 5km에 다가갈수록 나의 질량은 무한대가 되고 내가 걷는 방향에서 나를 향해 정면으로 도달하는 광자(빛알)가 늘어나 마치 서치라이트를 비춘 것처럼 내 눈앞이 엄청 밝아보인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떠올리면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난다. 부모님이 출근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에게 일하는 시간 8시간은 일주일이 될 것이다. 친구와 아침 8시에 만나자고 약속하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친구는 한참을 기다려야 올 것이다. 내 시계와 친구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빛의 속도가 느린 세상에서는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얼마의 속도로 가야 하는지도 약속해야 한다.
상수가 한 치라도 달라지면 이런 기상천외한 일이 마구 벌어진다. 중력 상수가 100배가 되면 모든 생명체는 바닥에 펼쳐진 부침개 모양이 되고 플랑크 상수가 거시적인 값이 되면 축구공은 파동으로 날아오고 공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양자역학의 확률로 결정된다. 초능력자처럼 벽을 스르륵 통과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는 놀라운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상수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값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작은 점인 이 지구에서 태어나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말이다. 정말 상수가 그 값인 것이 다행일 지경이다. “중력 상수가 100배가 되면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 속도는 10배가 된다. 화학적인 에너지를 주로 이용하는 로켓을 지구 밖으로 발사하기도 어려워진다. 인간이 만든 비행기도 지금 모습대로면 공중을 날기 어렵다. 더 커진 추진력과 더 넓은 날개를 가진 모습이어야 날 수 있다. 지구의 대기 조성도 바뀐다. 현재 지구의 대기에 수소와 헬륨 같은 원소가 극히 드물게 존재하는 이유는 가벼운 원소의 열운동으로 인한 속력이 무척 커서 지구의 중력이 가벼운 원소를 대기 안에 머금고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력 상수가 훨씬 큰 세상이라면 ‘중력 상수가 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고민하는 우리도 이곳에 없다.”(53~54쪽)
저자 김범준의 이런 사고 실험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과학적 탐구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우연성을 우주의 필연성과 연관 짓는 철학적 사유이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을 향한 인간의 갈망
세상을 만든 자연 법칙과 상수 찾기
인간이 이성적 존재인 이유는 세상의 기원과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원한 우주의 생성을 이해함으로써 생의 덧없음을 견디고 영원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닿으려고 한다. 그때 고대의 자연철학자부터 오늘날의 과학자를 사로잡은 것은 우주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된 것만 같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발견한 법칙과 특정한 값은 규칙적이고 보편적이며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했다. 과학자들은 깨달았다. 세상이 다른 모습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모습이고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며 우주를 이해하려는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특별한 값, 상수 때문임을 말이다.
어떤 측면에서 과학의 역사는 상수를 더 정확하게 결정하는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17세기의 뢰머는 목성의 위성 이오의 공전 주기가 언제 측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이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합리적인 예측을 하고 그 속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시도를 했다. 지구의 공전 궤도 반지름과 이오의 공전 주기의 차이를 이용해 뢰머가 구한 빛의 속도는 약 20만 km/s로 현재 하는 값과 근접하다. 그 이후 빛의 속도를 더 정확하게 구하려는 수많은 노력이 이어졌고 과학자들은 빛이 진공에서 299 792 458 m/s로 이동한다고 합의했다. 이 빛의 속도 c는 세상을 이해하는 물리학의 여러 혁신적인 사고의 토대가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가정으로 전개되는 특수상대성이론은 내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결론으로 시간에 대한 인간의 통속적 관념을 근본부터 바꿔버렸다.
그렇기에 상수를 정하는 과학적 탐구는 곧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과 같다. 중력 상수, 플랑크 상수, 볼츠만 상수, 전하량 상수, 원주율, 보어 반지름, 보어 마그네톤, 파이겐바움 상수 등 물리학의 핵심적인 상수들은 필멸하는 보잘것없는 존재인 우리가 우주를 이하게 만들었다. “물리학이 우주 어디에서나 같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해 불가능한 이해 가능성은 물리학이 우주 어디서나 같기 때문입니다.”(12쪽)
인간이 창조한 우주적 보편성
상수로 만드는 단위의 세계
정확한 상수를 찾는 것은 또한 서로 다른 것을 공통의 기준으로 비교해볼 수 있게 하는 단위의 보편성을 창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사실 저자의 표현대로 “길고 짧은 것을 대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당신이 생각하는 기준이 일치하기가 어렵고, 서울의 롯데월드타워의 길이를 재려고 평양의 류경호텔을 뽑아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탐구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편리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단위의 통일은 상수 덕분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단위의 역사도 상수의 역사처럼 좌충우돌이었다. 거리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원시적으로 발의 크기를 기준으로 삼는 피트가 있었다. 그러다가 지구의 크기를 활용하여 1 m에 해당하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금속 막대를 만들어 대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 금속 막대는 편리함 덕분에 국제적 표준이 되었지만 아무리 단단한 금속이어도 물체의 길이는 미세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빛이 진공에서 정확히 1/299 792 458 s 동안 진행한 거리를 1 m로 하자는 제안이다. 빛의 속도는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하므로 양자역학을 아는 외계인도 이해하는 진정한 보편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1 s(초)는 또 어떻게 정할까? 이 역시 외계인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양자역학적 방식을 이용한다.
저자 김범준은 시간, 거리, 질량, 온도, 압력 등 우리가 공기처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보편 단위의 역사를 추적한다. 더 나아가 이 단위들이 진정으로 보편성을 획득한 것은 우주 어디서나 같은 법칙, 상수를 이용해서였음을 보여준다. “과학에서 단위의 발전사는 바로 물리학의 보편 상수를 우리가 더 정확히 측정한 역사”(12쪽)이다.
단위의 보편성은 그 의미가 깊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천부적인 권리 같은 보편 인권의 추구와 보편 단위는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의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우리 인류가 후손의 복지와 지구의 지속성을 고민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비교 가능한 단위 덕분이다. 질량과 부피를 재고 기온을 측정하는 단위 없이 어떻게 정확성과 지속 가능성을 말하겠는가. 단위는 곧 인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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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수가 한 치라도 달랐다면?
존재의 이유를 찾는 흥미진진한 사고 실험
세상은 왜 다른 모습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모습일까? 왜 우리가 살기 좋게 되어 있을까? 과학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신이 아니라 우주를 만든 보편적인 수, 즉 상수에서 찾는다. 상수가 어떻게? 이를 위해 김범준은 거꾸로 시작한다. 바로 우주를 구성하는 상수가 한 치라도 달랐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하는 사고 실험을 펼치는 것. 만약 빛의 속도가 내가 걷는 속도, 즉 시속 5km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력 상수가 100배나 크다면? 플랑크 상수가 관찰 가능한 거시적인 크기라면? 볼츠만 상수가 10배가 된다면?
광속이 시속 5km라면 이것은 역시나 우주의 모든 존재가 따라야 할 엄격한 제한 조건이어서 내가 시속 5km에 다가갈수록 나의 질량은 무한대가 되고 내가 걷는 방향에서 나를 향해 정면으로 도달하는 광자(빛알)가 늘어나 마치 서치라이트를 비춘 것처럼 내 눈앞이 엄청 밝아보인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떠올리면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난다. 부모님이 출근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에게 일하는 시간 8시간은 일주일이 될 것이다. 친구와 아침 8시에 만나자고 약속하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친구는 한참을 기다려야 올 것이다. 내 시계와 친구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빛의 속도가 느린 세상에서는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얼마의 속도로 가야 하는지도 약속해야 한다.
상수가 한 치라도 달라지면 이런 기상천외한 일이 마구 벌어진다. 중력 상수가 100배가 되면 모든 생명체는 바닥에 펼쳐진 부침개 모양이 되고 플랑크 상수가 거시적인 값이 되면 축구공은 파동으로 날아오고 공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양자역학의 확률로 결정된다. 초능력자처럼 벽을 스르륵 통과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는 놀라운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상수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값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작은 점인 이 지구에서 태어나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말이다. 정말 상수가 그 값인 것이 다행일 지경이다. “중력 상수가 100배가 되면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 속도는 10배가 된다. 화학적인 에너지를 주로 이용하는 로켓을 지구 밖으로 발사하기도 어려워진다. 인간이 만든 비행기도 지금 모습대로면 공중을 날기 어렵다. 더 커진 추진력과 더 넓은 날개를 가진 모습이어야 날 수 있다. 지구의 대기 조성도 바뀐다. 현재 지구의 대기에 수소와 헬륨 같은 원소가 극히 드물게 존재하는 이유는 가벼운 원소의 열운동으로 인한 속력이 무척 커서 지구의 중력이 가벼운 원소를 대기 안에 머금고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력 상수가 훨씬 큰 세상이라면 ‘중력 상수가 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고민하는 우리도 이곳에 없다.”(53~54쪽)
저자 김범준의 이런 사고 실험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과학적 탐구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우연성을 우주의 필연성과 연관 짓는 철학적 사유이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을 향한 인간의 갈망
세상을 만든 자연 법칙과 상수 찾기
인간이 이성적 존재인 이유는 세상의 기원과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원한 우주의 생성을 이해함으로써 생의 덧없음을 견디고 영원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닿으려고 한다. 그때 고대의 자연철학자부터 오늘날의 과학자를 사로잡은 것은 우주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된 것만 같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발견한 법칙과 특정한 값은 규칙적이고 보편적이며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했다. 과학자들은 깨달았다. 세상이 다른 모습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모습이고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며 우주를 이해하려는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특별한 값, 상수 때문임을 말이다.
어떤 측면에서 과학의 역사는 상수를 더 정확하게 결정하는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17세기의 뢰머는 목성의 위성 이오의 공전 주기가 언제 측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이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합리적인 예측을 하고 그 속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시도를 했다. 지구의 공전 궤도 반지름과 이오의 공전 주기의 차이를 이용해 뢰머가 구한 빛의 속도는 약 20만 km/s로 현재 하는 값과 근접하다. 그 이후 빛의 속도를 더 정확하게 구하려는 수많은 노력이 이어졌고 과학자들은 빛이 진공에서 299 792 458 m/s로 이동한다고 합의했다. 이 빛의 속도 c는 세상을 이해하는 물리학의 여러 혁신적인 사고의 토대가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가정으로 전개되는 특수상대성이론은 내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결론으로 시간에 대한 인간의 통속적 관념을 근본부터 바꿔버렸다.
그렇기에 상수를 정하는 과학적 탐구는 곧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과 같다. 중력 상수, 플랑크 상수, 볼츠만 상수, 전하량 상수, 원주율, 보어 반지름, 보어 마그네톤, 파이겐바움 상수 등 물리학의 핵심적인 상수들은 필멸하는 보잘것없는 존재인 우리가 우주를 이하게 만들었다. “물리학이 우주 어디에서나 같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해 불가능한 이해 가능성은 물리학이 우주 어디서나 같기 때문입니다.”(12쪽)
인간이 창조한 우주적 보편성
상수로 만드는 단위의 세계
정확한 상수를 찾는 것은 또한 서로 다른 것을 공통의 기준으로 비교해볼 수 있게 하는 단위의 보편성을 창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사실 저자의 표현대로 “길고 짧은 것을 대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당신이 생각하는 기준이 일치하기가 어렵고, 서울의 롯데월드타워의 길이를 재려고 평양의 류경호텔을 뽑아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탐구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편리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단위의 통일은 상수 덕분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단위의 역사도 상수의 역사처럼 좌충우돌이었다. 거리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원시적으로 발의 크기를 기준으로 삼는 피트가 있었다. 그러다가 지구의 크기를 활용하여 1 m에 해당하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금속 막대를 만들어 대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 금속 막대는 편리함 덕분에 국제적 표준이 되었지만 아무리 단단한 금속이어도 물체의 길이는 미세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빛이 진공에서 정확히 1/299 792 458 s 동안 진행한 거리를 1 m로 하자는 제안이다. 빛의 속도는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하므로 양자역학을 아는 외계인도 이해하는 진정한 보편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1 s(초)는 또 어떻게 정할까? 이 역시 외계인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양자역학적 방식을 이용한다.
저자 김범준은 시간, 거리, 질량, 온도, 압력 등 우리가 공기처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보편 단위의 역사를 추적한다. 더 나아가 이 단위들이 진정으로 보편성을 획득한 것은 우주 어디서나 같은 법칙, 상수를 이용해서였음을 보여준다. “과학에서 단위의 발전사는 바로 물리학의 보편 상수를 우리가 더 정확히 측정한 역사”(12쪽)이다.
단위의 보편성은 그 의미가 깊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천부적인 권리 같은 보편 인권의 추구와 보편 단위는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의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우리 인류가 후손의 복지와 지구의 지속성을 고민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비교 가능한 단위 덕분이다. 질량과 부피를 재고 기온을 측정하는 단위 없이 어떻게 정확성과 지속 가능성을 말하겠는가. 단위는 곧 인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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